2026년09월28일mon
 
티커뉴스
OFF
뉴스홈 > 사설ㆍ칼럼 > 데스크칼럼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강원구칼럼>사초(史草)로 발단된 무오사화(戊午士禍)

사초(史草)란 없애거나 보는 것이 아니고, 이것으로 정국이 혼란스러워도 안 돼
등록날짜 [ 2013년10월18일 19시17분 ]
 
사초(史草)란 조선시대 사관(史官)이 시정(時政)을 적어 둔 사기(史記)의 초고(草稿)로 실록(實錄)의 원고가 되며, 맨 처음 쓴 것을 초고(草稿)라 한다.

  경남 함양군청 앞에 학사루(學士樓)가 있는데, 그곳은 최치원선생이 함양현감으로 있을 때 지은 것으로 무오사화(戊午士禍)의 발단이 된 곳이다. 유자광(柳子光)은 훈구파의 중심인물로, 무오사화를 일으켜 사림파를 제거한 뒤 권력을 장악했으며, 남이(南怡) 강순(康純) 등이 역모를 꾀한다고 탄핵하여 제거하였다.

  유자광이 경상도 관찰사로 내려와 있던 어느 날 함양에 들러 김종직(金宗直)을 만나려 했으나, 김종직은 남이를 모함하여 죽인 유자광을 공무핑계로 피해버리자, 유자광은 학사루에 올라 시 한수 남기고 떠났다. 김종직이 학사루에 걸린 시판을 보고 노하여 불쏘시개로 사용했고, 그 말이 유자광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김종직은 정몽주와 길재의 문하로 후진을 양성하며 조선 유학의 맥을 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아버지의 김숙자의 학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영남학파의 우두머리로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성종의 각별한 총애를 받아 제자들을 관직에 등용시킴으로써 훈구파와 대립을 하였다.

  그는 일찍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었는데, 그가 죽은 지 6년 후인 1498년에 제자 김일손(金馹孫)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조의제문을 성종실록 사초에 적어 넣었다.

  조의제문이란 항우(項羽)에게 살해당하여 강물에 던져진 '초나라 의제(義帝)를 조상한다'는 제문이다. 이것은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꼬는 내용으로, 살해당하여 강물에 던져진 단종에 대한 묘사와 유사한 면이 있어 세조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이극돈은 김일손이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었음을 듣고, 이를 세조의 찬탈(簒奪)에 대한 비유로 간주하여 사림파를 대대적인 숙청작업에 착수했다. 유자광은 이 부분을 세조와 훈구공신을 비방한 증거로 들이댔으며, 그들에게 올가미를 씌웠다.

  사초로 인하여 김일손은 서울 한 복판 광화문 앞에서 능지처참(陵遲處斬) 되었으며,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고 많은 신진사류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조선 순조 때 유씨부인(兪氏夫人)이 지은 조침문(弔針文)에  “伯仁由我而死(백인유아이사) 백인은 나로 인해 죽었다” 라는 글이 나온다. 이 말은 동진(東晋)의 왕도(王導)가 한 명언으로 알려져 있다. 왕도는 진 원제(晋 元帝)인 사마예(司馬睿)를 옹립해 동진 왕조를 건립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이다. 왕도(王導)의 종형제로 왕돈(王敦)이 있었는데, 그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왕도는 크게 놀라 일족과 함께 원제에게 읍소하며, 자신들은 적과 통정한 바 없으며, 충성을 다하겠노라 고한다. 이때에 백인(伯仁)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벼슬은 상서(尚書)다.

  백인(伯仁)이 나서서, 왕도가 왕돈의 반역을 절대 따르지 않았음을 아뢰며 그를 변호했다. 이에 원제는 일리가 있다고 여겨 이를 받아들인다. 왕도는 하지만  이런 사정을 알지 못했다.

  그 후 왕돈은 군대를 일으켜 원제 측의 유괴(劉槐)를 무찌르고 남경까지 점령하고, 스스로 승상(丞相)이 되어 조정을 좌지우지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왕돈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은 당연히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 이 때 백인도 걸려들었다.

  당시, 왕돈의 4촌 동생인 왕빈(王彬)은 통곡을 하며, 백인을 죽이지 말 것을 왕돈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그러나 왕돈의 곁에 있던 왕도를 흘깃 보며 뜻을 물었으나, 왕도는 단 일언반구도 하지 않아 백인은 죽고 말았다.

  왕도가 우연히 백인의 글을 읽게 되었다. 백인이 원제에게 왕도의 무죄함을 주장하는 것이 있었다. 그는 그 때 통곡을 하며  “我雖不殺伯仁,伯仁由我而死(아수불살백인, 백인유아이사)  내가 비록 백인을 죽이지 않았지만, 백인은 나로 인해 죽었다”라고 탄식하였다. 지난 산동성 임기(臨沂)는 제갈공명, 왕희지, 왕도, 왕돈 등이 태어난 곳으로 옛날에는 ‘낭야’란 지역으로 유명한 곳이다.

  사초(史草)란 함부로 없애거나 보아도 되는 것이 아니고, 이것으로 인해 정국이 혼란스러워도 안 된다.

         2013.  10.  18

  姜元求 행정학박사. 한중문화교류회 중앙회장. 

저작권자 ⓒ 이데이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 0 내려 0
강원구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김세곤칼럼>탁영로와 사관 김일손(1)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강원구칼럼>순천 정원박람회를 보고 (2013-10-24 02:30:50)
<강원구칼럼> 한글 우수해도 한자(漢字)를 함께 써야 (2013-10-08 16:30:59)
순천시, '시민 참여부터 다양한...
전남광주특별시교육청, ‘제580...
광주특별시 서구, 어르신 안전...
전남광주특별시, 자매결연 40주...
광주 무등·산수·하남도서관, ...
장성군,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들...
전남광주 농수산식품 수출, 역...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