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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의 수은 강항선생>영광 내산서원에서 1

전남 영광군 불갑면에 있는 내산서원, 수은 강항 모신 곳
등록날짜 [ 2015년02월24일 23시13분 ]

전남 영광군 불갑면에 있는 내산서원을 간다. 이곳은 수은 강항을 모신 곳이다. 사당 용계사에는 강항과 그의 제자 윤순거의 신위가 모셔져 있고 뒤쪽 산기슭에는 강항 묘소가 있다.  

유물전시관을 구경하였다. 입구에는 얼굴에 흉터자국이 있는 강항 영정이 있다. 흑백인데 일본에서 보내준 영정이란다. 전시관 안에는 여러 개의 전시물이 있다. ‘포로가 된 강항 선생’, ‘오즈에서의 억류생활’, ‘홍유 강항 현창비’,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후지와라 세이카’, ‘후지와라 세이카와의 왕복 서신’, ‘일본 주자학 경전’등이다.

 

이중에서 강항과 후지와라 세이카와의 만남을 소상하게 알 수 있는 전시물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후지와라 세이카와의 왕복 서신’, ‘일본 주자학 경전’이 그것이다.

가. 후지와라 세이카와의 왕복 서신

먼저 ‘후지와라 세이카와의 왕복 서신’ 전시물을 살펴본다. 이는 3단으로 되어 있는데 1,2단은 왕복편지이고, 3단에는 편지 일부가 한글로 번역되어 있다. 이를 읽어 본다. (주5)  

저 후지와라가 생각컨데, 그 대 강선생은 조선의 관리로서 뜻하지 않게 일본으로 붙잡혀 왔습니다. 만일 일이 잘 된다면 본국인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요. 자신의 고향을 잊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불행히도 일본에 머물러야 한다면 그대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습니다. ... 

이 부분만 읽고서 강항과 세이카 간에 주고받은 왕복편지 사연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다행히도 국립진주박물관이 2010년에 <임진왜란 조선인 포로의 기억> 국제교류전을 하면서 발간한 책에 이곳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왕복 편지가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주6)  

강항과 세이카 간의 왕복편지 사연은 이렇다. 후지와라 세이카는 아카마쓰 히로미치의 부탁을 받아서 강항에게 주자의 훈몽절구의 시를 병풍으로 써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이에 대해 강항은 세이카에게 “글씨 쓰기를 좋아 하지도 않을 뿐 더러, 솜씨도 하찮습니다.”라고 겸손히 사양하였다. 그러자 세이카는 "강항의 솜씨가 좋으며 다만 겸손한 것뿐"이라는 히로미치의 말을 듣고서 강항에게 다시 편지를 보내 결코 사양치 말라고 하였다.
한편 이 책에도 왕복편지가 번역되어 있다.  

저 후지와라가 생각하건대, 그 대 강선생은 조선의 관리로서 뜻하지 않게 일본으로 붙잡혀 왔습니다. 만일 일이 잘 된다면 본국인 조선으로 되돌아갈 수 있겠지요. 자신의 고향을 잊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불행히도 일본에 머물러야 한다면 그대 스스로 생계를 꾸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생계의 어려움은 그리 걱정하지 마십시오. 옛날 중국 제나라의 도정백 陶貞白이란 사람이 조정의 사자에게 두 마리의 소를 그려 주었습니다. 그 의미는 아무도 모릅니다. 당신도 이 뜻을 알아 염려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더더욱 이국인 異國人이기 때문이잖습니까?

이 편지에는 세이카가 강항과 그의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나타나 있다.  

그러면 후지와라 세이카와 아카마쓰 히로미치는 누구인가? 이는 강항이 쓴 <간양록>중 ‘적중문견록 賊中聞見錄’에 자세히 나와 있다. (주7)  

소신(小臣)이 교토에 온 다음 일본의 허실을 알기 위하여 때때로 일본인 승려(倭僧)와 접촉하였습니다.  

그 중에는 문자를 해득하고 사리를 아는 자가 없지도 않았습니다. 의사(醫師) 노릇도 하는 의안(意安)과 이안(理安)이란 승려도 감시받고 있는 소신을 만나러 자주 찾아왔습니다.   또 묘수원(妙壽院)의 승려 순수좌(舜首座 : 후지와라 세이카)라는 자가 있는데, 그는 경극황문정가(京極黃門定家)의 자손이고, 단마수(但馬守) 적송좌병광통(赤松左兵廣通 : 아카마쓰 히로미치)의 스승으로서 자못 총명하여 옛글(古文)도 잘 알고 글에 통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질이 칼칼하여 왜인들에게 용납되지 못하였습니다. 언제인가 내부(內府) 가강(家康 도쿠가와 이에야스)이 그가 훌륭한 인재란 말을 듣고 교토에다 집을 짓고 해마다 쌀을 2천석씩을 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순수좌는 집도 쌀도 받지 아니하면서, 단지 약주소장 승준(若州少將勝俊 기노시타 가츠토시), 좌병광통(左兵廣通 아카마쓰 히로미치)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강항이 후지와라 세이카 등과 만난 것은 1598년 9월 하순이후이다.

강항 일가는 오즈성에서 교토 후시미(伏見)로 옮겨져서 도도 다카도라의 감시하에 어느 빈 집 창고에서 기거하였다. 후시미에는 이미 여러 조선 선비들이 있었다. 즉 동래 김우정, 하동 강사준 · 강천추 · 정창세, 함양 박여즙, 태안 전시습, 무안 서경춘등이었다. 이들은 매일 만났다.  

<간양록>에 언급되었듯이 의사 醫師 의안(意安)과 승려 이안(理安)은 감시받고 있는 강항을 자주 찾아왔다. 의안(意安)은 교토의 수리사업과 베트남 무역으로 유명한 스미쿠라 료우이 角倉了以의 동생이고 막부 의사 醫師인 요시다 이안(길전의암 吉田意庵)이고, 저작권자 ⓒ 이데이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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