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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인영 4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나철, 대종교 교주가 되다.
등록날짜 [ 2015년02월26일 18시01분 ]


1909년 음력 1월15일에 단군교를 중광한 나인영은 1909년 7월 전후하여 공개적으로 포교활동을 벌였다. 
 

대한매일신보는 1909년 7월21일에 나인영이 단군교를 중광하였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어서 황성신문은 7월25일에 경시청이 단군교를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8월6일자 대한매일신보에는 ‘단군가’가 실렸다. 단군가의 필자가 익명이었는데 대종교측은 나인영이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단군가’는 4.4조의 상당히 긴 시가였는데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우리 시조 단군께서 태백산에 강림하사
나라 집을 창립하여우리 자손 주시었네.
거룩하고 거룩하다.태황조의 높은 성덕
거룩하다. 모든 고난 무릅쓰고 황무지를 개척하사
양전미택 良田美宅 터를 닦아 우리 자손 기르셨네
잊지마세 잊지마세 태황조의 깊은 은덕
잊지마세. 
(중략)
형제들아 자매들아  대황조의 자손된 자
우리 형제 자매들아 천번 만번 즉더라도
변치마세 변치마세  태황조를 향한 충성
변치마세 형제들아 자매들아
조상나라 모든 민족 우리 형제 자매들아
지성품고 동력하야  빛내보세 빛내보세
태황조의 높은 이름 빛내보세  

나인영은 이런 가사를 통해 단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교세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한편 나인영은 1909년 음력 10월3일 (양력 11월15일)에 개극절 開極節 행사를 하였다. 

개극절은 천신(天神)인 환인(桓因)의 뜻을 받아 환웅(桓雄)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태백산(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어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날이다. 

이 행사는 교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나인영의 집에서 하였는데, 김윤식이 제물을 봉헌하고 대한의학교는 당일 휴교하였다. 황성신문은 11월21일자 논설로 ‘단군성조제일 檀君聖祖祭日’을 게재하여 개극절 행사의 의의를 알렸다. 1) 

이어서 나인영은 1909년 12월1일에 대종교 이념의 실천강령이라 할 수 있는 ‘5대종지 5大 宗旨’’를 발표하였다. 5대 종지는 경봉조신 敬奉祖神, 감통영성 感通靈誠, 애합족우 愛合族友 , 안고기토 安固基土 ,근무산업 勤務産業이었다. 이는 단군을 받들어 모시고, 민족의 단합과 국토수호, 그리고 산업에 종사하자는 단군교의 지향이었다.  

아울러 음력 12월11일에는 교직 敎職과 교임 敎任을 설정하였다. 교직은 사교 司敎, 참교 參敎, 찬교 贊敎이고 교임은 시교사 施敎師. 순교원 巡敎員이었다. 이날 홍암 나인영은 본사에서 교도들이 모여 행한 교직 선거에서 도사교 都司敎로 추대되었다. 도사교는 교주와 마찬가지 직함이다.  

나인영은 정훈모 ·오기호 · 최전 등을 참교로 선정했다. 나아가 나인영은 이름을 나철 羅喆로, 오기호는 오혁으로, 정훈모는 정선으로 개명하였다. 개명은 새롭게 살겠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1910년 음력 3월15일(양력 4월24일)에 대사교 나철은 단군이 승천하는 날을 기념하는 어천절 御天節 의례를 올렸다. 2) 

단군교는 포교 1년 만에 교인이 급속히 늘어났다. 교단의 기록에는 1910년 6월말 현재 교인이 서울이 2,748명, 지방이 18,791명으로 총 21,539명이라 하였다. 신자가 2만 명에 달할 만큼 교세가 확장되었던 것이다.  

나철은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일 庚戌國恥日 6일 후인 9월4일에 단군교를 대종교 大倧敎로 개칭하였다. 이 날 나철은 북부지사와 남부지사를 설치하고 정선과 오혁을 각각 지사교에 임명하였다.  

단군교를 대종교로 개칭한 것은 국권상실이라는 참담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당시에 일제는 단군교를 탄압하는 모종의 조치들을 하고 있었다.  

1) 나철은 1910년 10월 3일에 개극절을 개천절로 바꾸어 경하식을 올렸다. 개천절은 음력 10월3로 대한민국 수립 후까지도 음력으로 지켜왔는데, 1949년에 문교부가 위촉한 ‘개천절 음·양력 환용(換用)심의회’의 심의결과 음·양력 환산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와 ‘10월3일’이라는 기록이 소중하다는 의견에 따라, 1949년 10월 1일에 공포된「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 음력 10월 3일을 양력 10월 3일로 바꾸었다. 

2) 어천절(御天節)은 대종교의 4대 경절 가운데 하나로, 기원전 2448년 10월 3일 인간 세상에 강림한 한배검(단군)이 124년 동안의 교화(敎化)와 93년 동안의 치화(治化)를 마친 지 217년이 지난 기원전 2241년 3월 15일 아사달(백두산)에서 다시 승천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대종교의 4대 경절은 중광절 · 어천절 · 가경절 · 개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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