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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주자학 경전
다음에 눈에 띄는 것은 ‘일본 주자학 경전’ 전시물이다. 여기에는 논어 · 맹자 · 중용 · 역경 · 춘추 · 근사록 · 정몽 正蒙 등 여러 필사본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책들이 바로 강항이 일본 포로생활 중에 필사한 책들이다. 이 책들은 지금 일본 국립공문서관 國立公文書館에 소장되어 있는데, 사단법인 영광내산서원 보존회에서 일본에 가서 복사해 온 것이다. (주16)
그런데 책들 바로 옆에 ‘사서의 일본 훈점 본’, ‘오경의 일본 훈점 본’이라는 설명이 있다. 이것이 바로 후지와라 세이카가 썼다는 <사서오경 왜훈 四書五經倭訓>이다.
<사서오경왜훈 四書五經倭訓>은 남송의 성리학자 주자(1130-1200 본명은 주희이다)의 ‘사서집주’에 따라 본문을 필사하여 일본식 훈을 단 논어 · 맹자 · 대학 · 중용 왜훈倭訓과, 오경대전을 기본으로 하여 필사한 시경· 서경· 역경 ·춘추 · 예기 왜훈 등 20여권이었다. (주17)
이 책이 바로 일본 최초의 주자학 텍스트였다. 이 텍스트는 일본에서 주자학적 이해를 시킨 원본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만든 후지와라 세이카를 일본 주자학의 비조 鼻祖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 <사서오경왜훈>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세이카가 강항에게 보낸 편지가 그 단서를 제공한다. 편지의 일부를 읽어보자.
일본에서 유학을 말하는 자는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유 漢儒의 가르침을 전할 뿐이다. 아직도 송유 宋儒의 이치를 알지 못한다. ..... 이 때문에 아카마쓰 히로미치는 나에게 지금 새롭게 사서오경의 경문을 쓰고 왜훈 방점을 덧붙여 송유 宋儒의 뜻을 후학들이 편리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라고 분부했다. 일본에서 송유의 옳음을 주장하는 사람은 이 책을 원본으로 삼을 것이다.
(<등원성와집> 권지십 卷之十 문강항 問姜沆) (주18)
<사서오경왜훈>발간 작업은 다케다 성주 아카마쓰 히로미치가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사서오경왜훈>을 만들라는 분부로 시작되었다. 이 <사서오경왜훈> 간행에는 먼저 사서오경의 필사가 필요했는데 이 필사작업에 강항을 비롯한 10여명의 조선인 유학자가 동원되었다.
강항과 함께 수용된 여러 선비들, 즉 동래 김우정, 하동 강사준 · 강천추 · 정창세, 함양 박여즙, 태안 전시습, 무안 서경춘등이 그들이었다. (주19) 이리하여 후지와라 세이카는 강항 등 조선 선비들이 필사한 사서오경에 일본 훈점을 적었다. 즉 일본식 주석을 단 것이다.
책들이 거의 완성되자 세이카는 강항에게 이 책들의 발문을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에 강항은 20권에 달하는 <사서오경왜훈>의 발문을 썼다. (주20)
한편 세이카는 지금 일본 유학은 한유 漢儒의 가르침을 전할 뿐, 아직도 송유 宋儒의 이치를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이 책이 송유의 옳음을 깨치는 원본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주21)
주16) 강항은 일본에 포로로 있을 때 <사서오경왜훈> 간행에 참여하여 발문을 썼고, <곡례전경 曲禮全經 >, <소학>, <근사록>, <근사속록>, <근사별록>, <통서 通書>, <정몽 正蒙 > 등 16종을 수록한 <강항휘초 姜沆彙抄>를 남겨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밖에 <문장달덕록 文章達德錄 >과 동양문고 소장본 <역대명의약전 歷代名醫略傳>의 서문을 썼다.
주17) 주희(朱熹, 1130년 ~ 1200년)는 중국 남송의 유학자로, 주자(朱子)라는 존칭으로도 불린다. 자(字)는 원회(元晦), 중회(仲晦)이다. 호(号)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노인(雲谷老人), 창주병수(滄洲病叟), 둔옹(遯翁)등 여러 가지이다. 중국 복건성(福建省) 우계(尤溪)에서 출생했으며 19세에 진사가 된 후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맹자, 공자 등의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주돈이, 정호, 정이등의 유학 사상을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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