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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의 수은 강항선생>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강항 (5)

강항선생과 후지와라 세이카, 아카마쓰 히로미치 등과의 만남
등록날짜 [ 2015년03월03일 13시20분 ]

일본에 유학이 전해진 것은 405년경인데 백제의 왕인 박사가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갔다고 한다. 이것은 단지 유학 서적이 일본에 전해진 것에 불과하였다. 가마쿠라(1180-1333), 무로마치(1336-1573)시대에는 불교가 주류였고, 유학은 그 영향력이 미미하였다. 이 당시 유학은 한유 漢儒 즉 중국 한나라 시대의 훈고 訓詁 · 기송 記誦 중심이었다.

 

한편 무로마치 시대에는 송나라의 주자학 서적들이 유입되어 일부 승려들 사이에서 읽혀졌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지, 순수하게 주자학을 배우고 연구한 것은 아니었다.  

주자학이 일본에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조선의 유학자들이 일본에 포로로 잡혀 오고, 조선에서 약탈한 주자학 관련 서적들이 일본에 들어오면서 부터였다.

그리하여 포로로 끌려온 강항과 세이카의 만남이 있었고, 세이카는 강항의 도움을 받아 <사서오경왜훈>을 발간함으로서, 송유 宋儒 즉 종래의 유학과는 다른 새로운 체계인 주자학을 일본에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주22)이러한 세이카의 열정에 대하여 강항은 아래와 같이 극찬 하였다. (주23)  

세이카는 일본에서 주자가 전한 주를 배우는 유일한 사람이다.
일본에서 주자학에 대해서는 세이카 이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한편 세이카는 강항에게 조선의 과거 절차, 춘추(春秋)의 석전(釋奠)이며 경연(經筵)ㆍ조저(朝著)의 규정 등에 대하여도 자세히 물었다. (주24)

이렇듯 세이카는 학문으로서의 주자학만이 아니고, 주자학에 입각한 유교국가의 제도나 의식 등에 대하여도 알고 싶어 했다. 

이에 대하여 강항은 초야에 묻힌 사람이라 미처 듣지 못했다고 대답하고, 단지 과거제도와 석전(釋奠)절차만 대강 알려 주었다.  

그랬더니 세이카는 길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애석하게도 내가 중국에서 태어나지 못함이여. 또 조선에서도 나지 못하고 일본에서도 하필 이런 때에 태어났단 말인가?"하였다.   그런데 이런 조선 유교제도의 실천자가 바로 히로미치였다.

히로미치는 상례(喪禮)가 없는 일본에서 홀로 삼년상을 실행하였고, 중국의 제도 및 조선의 예절을 독실히 좋아하며, 의복ㆍ음식의 세세한 절차에 있어서도 반드시 중국이나 조선의 것을 본받고자 하였다.

또한 조선의 <오례의서(五儀儀書)>· <군학석채의목(郡學釋菜儀目)>을 얻어 보고 그의 사읍(私邑)인 단마(但馬)에다 공자묘(廟)를 세웠다. 아울러 우리나라 제복(祭服)ㆍ제관(祭冠)을 본떠 입고 틈틈이 그 부하들을 거느리고 제의(祭儀)를 익혔다. (주25)

세이카는 이렇게 유학에 신실한 히로미치에 대하여 비록 일본에 살지만 일본 사람이 아니라고 평가하고 있다. (주26)  

주22) 주자학은 명나라 시대에 관학으로 자리잡았으며, 조선도 성리학의 조선의 통치사상으로 자리 잡아 200년간 꽃을 피웠다. 특히 1560년대에 일어난 이기 理氣 논쟁, 즉 퇴계 이황(1501-1570)과 고봉 기대승(1527-1572)간의 사단칠정논변은 조선 성리학의 백미로 꼽힌다. 주23) 호사카 유지, p141

주24) 춘추의 석전은 공자묘에서 봄과 가을에 두 번 공자를 제사 지내는 의식이고, 경연은 임금과 같이 유학을 공부하는 일이며, 조저는 관청의 관리등급 제도이다. 과거는 말할 필요도 없이 관리 선발제도인데 중국과 조선의 유교국가 체계의 근간이었다. 주25) 이 기록은 <간양록> ‘적중문견록’에 나온다.

한편 <오례의서(五儀儀書)>란 조선시대의 예전으로 성종11년(1475)에 만든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또는 그와 유사한 의례서로 추측된다. 오례는 길례, 흉례, 빈례, 군례, 가례의 다섯 가지 예이다. <군학석채의목(郡學釋菜儀目)>에서 군학(郡學)이란 조선각지에 설치된 향교로 이곳에서 행하여 진 석존 釋奠의 의궤(儀軌)로 생각된다.

주26) 제주출신 재일 사학자 강재언은 강항과 세이카 그리고 히로미치를 에도 유학을 탄생시킨 3인방으로 부르고 있다. (강재언, p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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