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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연구소제공>‘그녀에게 밀린 그’를 위한 위로

제 351 호, 박원재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의 글
등록날짜 [ 2015년03월13일 12시07분 ]

온라인을 중심으로 일각에서 페미니즘 논란이 뜨거운 모양이다. 불씨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IS를 제 발로 찾아간 것으로 알려진 한 고등학생이 던졌다. 통상 ‘김군’으로 지칭되는 이 학생은 자신이 IS에 자진 가담한 이유를 페미니즘이 싫기 때문이라고 해서 화제를 모았다.

이 불씨를 이어받아 지핀 것은 유명한 팝 칼럼니스트가 한 매체에 기고한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제목의 글이다.

그는 이 글에서 “페미니스트들이 도대체 김군에게 뭘 어쨌기에 ‘차라리’ 무시무시한 IS를 제 발로 찾아가는 길을 선택했을까”라고 자문하고는, “남성을 공격해 현재의 위치에서 끌어내리면 그 자리를 여성이 차지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근래의 페미니스트들은 근거 없는 남성우월주의에 길들어 있는 무뇌아적인 남성들보다 더 무뇌아적이라고 비꼬았다.
 

3라운드의 무대는 107회 세계여성의 날(3월 8일)을 계기로 아직도 갈 길이 먼 여권신장의 현실을 다룬 메이저 언론들의 지면이다. 이들은 국내외 여권신장의 현황을 다양한 시각에서 다루면서 페미니즘의 이모저모를 함께 곁들였는데, 한 신문은 관련 기사의 제목을 ‘그녀에게 밀린 그’라고 붙여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 남성들의 은폐된 불편한 시선을 재치있게 드러냈다.  

전통적 남성 역할 갈수록 줄어들어
이 시대의 남자들, 그것도 특히 젊은이들이 만약 페미니즘에 대해 정서적 혐오를 느낀다면 가장 큰 이유는 익히 지적되고 있는 것처럼 일자리 문제일 확률이 높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말 그대로 여성에게 ‘밀린’ 것이다. 삶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신의 것이라 여겼던 영역을 야금야금 파고드는 실력을 갖춘 경쟁자가 곱게 보일 리 없다.

적어도 학교에서의 주도권은 여자아이들에게 넘어간 지 오래고, 이 때문에 사내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남녀공학에 아이 보내기를 꺼린다는 사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요즘 남자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지는 것을 일견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이런 소식들을 접할 때면 남성의 용도폐기(?)를 예측한 한 문화인류학자의 글이 떠오른다. 마빈 해리스의 책 『문화의 수수께끼』로 기억되는데, 요지는 이렇다. 전통적으로 하나의 공동체에서 ‘남자’라는 종이 주로 수행하는 역할은 식량 확보와 외적 방어, 종족 보존 세 가지였다.

오랜 기간 남자가 여자에 비해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유지에 필수적인 이런 일들을 담당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지금도 남자의 전유물일까? 식량 문제 즉 생계를 책임지는 일부터 보자.

수렵시대는 물론이고 농경시대에는 이것이 분명 남자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오늘날도 그런가? 직업시장에서 이른바 ‘유리천장’으로 상징되는 성적 불평등 구조가 철폐된다면 여자도 충분히 생계를 책임질 능력이 있음을 솔직히 우리는 다 안다.
 

그럼 외적에 대한 방어는 어떨까? 사관학교의 여자 생도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기서 거론하는 것은 조금 궁색할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오늘날 전쟁은 백병전이 아니라 전자전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 더 핵심일 듯하다.

무인 비행기 드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모든 무기는 컴퓨터로 작동되고 위험한 임무는 점차 로봇이 대체하는 것이 오늘날 전쟁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남자의 ‘힘’이 필수적일까?
 

마지막으로 종족 보존은? 이 문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수컷이 아니라 암컷이라는 것은 동물의 세계에서는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종족보존의 주역은 수컷이 아니라 암컷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처럼 많은 남자가 필요할까?

더구나 인공수정을 통한 임신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상황에서 말해 무엇하랴. 적어도 이 부분에서 남성은 명백하게 잉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상도 가능하다. 여성이 모든 분야에서 남성을 압도하는 날, 쓸데없이 남아도는 남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엄친아’ 출신만 종마(種馬) 격으로 남겨두고 나머지는 도태시켜 버리는 세상 말이다.

  앞선 삶들이 남긴 유산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이런 세상을 상상하는 기분은 어떨까? 남성의 한 사람으로서 분명 유쾌하지 않은 미래상이다. 그러나 양성평등의 구현이라는 페미니즘의 근본취지를 이렇듯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만 재단하는 일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

그러기에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처한 현실이 여전히 어둡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평균임금이 아직도 남성의 63.4%에 머물고, ‘유리천장 지수’도 OECD 가운데 28위로 꼴찌인 것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이런 점에서 페미니즘을 오로지 여성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당파적 운동이라고 보는 시각은 협소하다. 그보다는 남녀를 아우르는 인간적 삶의 구현을 위한 또 하나의 이념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함이 더 바람직하다.
 

그러니 성적 불평등 구조를 내가 만들었느냐고 따지는 일같은 건 하지 말자. 이는 우리 삶이 본질적으로 맥락적 사건임을 애써 외면하는 속 좁은 태도이다.

모든 삶은 태생적으로 특정한 역사 문화적 맥락 위에서 전개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삶은 그것이 볕이든 그늘이든 앞선 삶들이 남긴 유산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한다.

이를 테면, 아담과는 일면식도 없고 선악과는 냄새도 못 맡았지만 원죄를 자신의 허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기독교도들처럼. 하여 이렇게 쿨하게 받아들이는 건 어떨까? “그래! 나는 그 남성 우위라는 특권의 떡고물조차 구경해 본 적이 없지만 그 덕에 우리 아버지가 큰소리 치며 사셨다니 내 양보하마. 그대들에게 이제 우리 종족과 동등한 지위를 기꺼이 허하노라.” 비록 ‘잉여’로 평가절하될 운명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합리적 판단력은 확실히 비교우위에 있다는 우리들 ‘이성적 동물’의 존엄을 지키는 최소한의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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