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09월29일tue
 
티커뉴스
OFF
뉴스홈 > 사설ㆍ칼럼 > 오피니언,해설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다산포럼>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제 752 호 유 지 나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등록날짜 [ 2015년04월21일 10시08분 ]
유독 풍성하게 피어나던 벚꽃이 찬바람에 쓸려 흘러내린다. 세월호 침몰 1주기를 보내는 서울 대기는 누런빛을 반사하며 지난 기억과 현재 진행형 풍경을 아프게 흘려보내는 중이다.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들뢰즈의 미래 예견은 한국 세상에선 현재 진행형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공지가 울리는 침몰하는 배와 함께 떠나버린 아이들의 죽음과 실종을 둘러싼 의혹은 사람들을 광장으로 나가게 한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이들이 곁에 없다, 현실 같지 않은 현실을 살고 있다”는 한 어머니의 심경 토로는 내게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퍼뜩 일깨워준다.

아이들을 찾아 나선 광장의 어머니들

  〈오피셜 스토리[La Historia Oficial]〉(1985, 아르헨티나)에 등장한 ‘오월 광장의 어머니들’ 이미지는 2015년 광화문 광장에서 봄비처럼 온몸과 맘에 저릿하도록 스며든다. 아르헨티나 대통령궁 앞, 아이들 숨결이 담긴 기저귀천으로 만든 하얀 스카프를 쓰고 목요일마다 오월 광장에 함께 모이는 어머니들은 1977년부터 군사정권이 비밀리에 납치, 고문, 처형으로 실종된 아이들을 찾아 나선다.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알리시아는 입양한 딸 가비의 부모가 누군지 점차 알게 되면서, 그저 남의 일이라고 지나치던 광장 어머니들을 달리 보게 된다. 할머니 한 분이 실종된 딸과 가비의 어린시절 사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기업체 간부인 남편과 가비를 키우며 중산층으로 살아가던 알리시아에겐 공적 기억이 사적인 삶에 접속되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진실에 직면한 알리시아는 거짓을 만들어낸 폭력적 남편을 떠나 새로운 삶에 접속한다.

  허구 영화장치를 통해 기억장치로서 예술의 힘을 보여준 이 작품은 남미권 영화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상을 수상하며 세계에 알려졌다. 이와 더불어 〈오월 광장의 어머니들〉(1985)이라는 다큐멘터리도 제작되었다. 민주화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친 정부는 어머니들에게 거액의 보상금을 제안하지만,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보상금을 거절하며 광장을 지킨다. 이런 사건이 아픈 역사의 한 장으로 끝나지 않은 채 다른 곳, 다른 시기에 유사한 형태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힘은 지켜보는 아이들을 인식하는 희망에서 나온다.

부조리한 어른 세상은 아이에게 어떻게 보일까?

  추억의 명화로 손꼽히는 네오 리얼리즘 대표작〈자전거 도둑(Ladri di biciclette)〉(1948, 이탈리아)을 기억하는가? 지켜보는 아이의 존재, 그 아이의 시선은 드라마를 짜나가는 방향타로 작동한다. 전단을 붙이며 하루하루 먹고 살 일을 힘겹게 찾은 아버지는 여배우 이미지를 보느라 한눈을 판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자전거를 훔쳐간다. 먹고 살 수단을 도둑맞은 아버지는 아이 눈을 피해 다른 자전거를 훔쳐내지만 결국 아이는 지켜보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든 비토리아 데 시카는 무솔리니의 파시즘 치하에서 멜로드라마 스타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러던 중 시나리오 작가 세자르 자바티니를 만나 현실에 접속하는 새로운 영화의 길에 들어선다. 그와 공동작업 한 일련의 작품들에선 아이들의 시선이 핵심이다.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I Bambini Ci Guardano)〉(1943, 이탈리아)와 〈구두닦이(Sciuscia)〉(1946, 이탈리아)는 〈자전거 도둑〉과 더불어 아이들 시선의 힘을 깨우쳐준다.

  최근 작고한 귄터 그라스의 대표적 소설을 각색한 폴커 슐렌도르프의 〈양철북(Die Blechtrommel)〉(1979, 독일)에서도 아이의 시선이 영화를 주도한다. 나치 점령시기 폴란드의 단치히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오스카는 어른들 세상의 부조리에 질려 아이로 남기로 결단한다. 나이가 들어도 성장을 멈춘 채 광기어린 세상을 지켜보는 아이의 시선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묘미를 살려낸다.

  이런 묘미는 책과 스크린 속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배운다. 떠나간 아이들, 숨쉬며 지켜보는 아이들, 그리고 OECD기준 14년간 초저출산국이자, “저출산으로 인구 소멸 국가 1호가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는 콜먼 교수의 충격적인 예견처럼 줄어드는 아이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그것은 어른들 세상의 잘못을 수정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문이다. SNS시대 지구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세월호 사태를 풀어내야 이곳도 아이들이 살만한 나라가 될 테니까.

저작권자 ⓒ 이데이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 0 내려 0
다산포럼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실학산책>‘잔인한 달’을 보내며 (2015-04-24 10:06:47)
<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전하! 최측근부터 법대로 처벌하시오. (2015-04-20 10:25:26)
영광군, 추석 맞이 병문안 문화...
광주특별시 서구, “즐기고 체...
전남광주특별시, 곡성 섬진강기...
광주국제판화교류전 10월1일 개...
전남광주특별시, 추석 연휴 기...
순천시, '시민 참여부터 다양한...
전남광주특별시교육청, ‘제580...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