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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산책>‘잔인한 달’을 보내며

제 355 호 박원재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등록날짜 [ 2015년04월24일 10시06분 ]
봄비가 잦다.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에 내리는 것이니 그야말로 ‘때맞춰 내리는 비’, 시우(時雨)이다. 이날 비가 오면 백곡이 윤택해진다는 곡우(穀雨)에도 비가 왔으니 올해 농사는 풍년일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다 보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는구나 하는 생각에 쓴웃음이 스친다. 젊었을 때는 봄비가 아무리 내려도 이런 생각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안 하던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것은 분명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이다.

 

경험이 쌓이니 고전 글귀가 마음 속 공명을 일으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나이테가 늘어나듯 경험이 두터워진다는 뜻이다. 그렇게 두터워진 경험은 그동안 지나쳤던 것을 문득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하여 고은 선생의 시처럼,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을 내려갈 땐 보게 만든다. 보이는 대상이 바뀐 것이 아니라 보는 주관의 폭과 깊이가 변한 결과이다. 옛날에 읽고 무심히 기억의 갈피에 꽂아두었던 글귀가 어느 날 기대하지 않은 장소와 시간 속에서 전혀 다른 울림으로 떠오르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고전(古典)’은 일단 한 번 우리들 기억 속으로 들어오면 경험을 숙주로 그 의미를 무한 울림으로 증식시키는 공명 바이러스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근래 그렇게 가슴에 부쩍 공명을 일으키는 고전의 글귀가 하나 있다. “화를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不遷怒, 不貳過]”는 『논어』의 글귀이다. 공자의 고국인 노나라 애공(哀公)이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배움을 좋아하냐고 묻자, 공자가 안회(顔回)라고 대답하면서 말하는 내용 가운데 나온다.

애공이 물었다. “제자들 가운데 누가 배우기를 가장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안회라는 사람이 배우기를 좋아했습니다. 화를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단명하여 지금은 죽고 없습니다. 그 후로는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논어』 「옹야: 03」)

  안회는 공자가 제일 아꼈던 제자이다. 그가 젊은 나이로 죽자 공자가 하늘이 자신을 버린다며 통곡했을 정도이다. 그런 안회를 공자는 배우기를 무척 좋아한 제자로 기억한다. 왜 그렇게 평가했을까? 내용을 염두에 둘 때, 안회가 화를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 품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것만 가지고 말한다면 공자에게 있어 공부란 화를 남에게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반복하지 않는 품성을 갖추는 것이다. 지식인이 아닌 덕성인을 목표로 했던 유교적 교육론 또는 수양론의 일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기준을 나 자신에게 적용하면 명색은 박사지만 ‘공부’는 한참 멀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바깥 일로 겪은 갈등이나 자신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화를 뜬금없이 타인들, 특히 그중에서도 허울뿐인 가장의 권위에 기대 가족들을 상대로 짜증을 내며 풀려고 하는 자신을 종종 보게 되기 때문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그야말로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화를 남에게 옮기는 전형적인 소인배의 행태이다. 그러다 보니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을 자신에게 비추어 성찰하지 않고 남 탓으로 돌려 결국에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곤 한다.

  앞의 두 구절[不遷怒, 不貳過]이 병렬관계인지 인과관계인지 구문상으로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병렬보다는 인과관계로 읽는 것이 문맥에 좀 더 부합될 성 싶다. 화를 남에게 옮기기 때문에 성찰이 부족하고, 또 바로 그 때문에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공자가 안회를 두고 배우기를 가장 좋아했던 제자라고 칭찬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긴 거친 음식을 먹고 누추한 곳에 살면서도 그것을 오히려 즐거움으로 삼았던 사람이 안회이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품이었을 것이다. 나 같은 범인은 언감생심 작심하기도 버거운 경지이다.

 

“화를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한 서구 시인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 4월이 지나가고 있다. 전후 유럽의 황폐해진 정신적 상황을 〈황무지〉라는 제목으로 묘사한 시의 첫 구절을 그 시인은 이렇게 시작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 우리에게도 4월은 여전히 잔인한 달이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다른 이들이 겪는 고통을 공감하려 가슴을 저몄고,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물으면서 유사한 비극의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와 실천을 갈망해왔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걷는 시늉만 해온 느낌이다. 원인은 여러 가지로 지적된다. 누구는 정부의 무능과 태만을 질책하고, 누구는 제도와 시스템의 부재를 비판하고, 누구는 편협한 진영논리에 입각한 사회적 갈등의 증폭을 탓한다. 어느 한 가지라기보다 아마 이 모두가 원인일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은연중 자신의 화를 남에게 전가하여 풀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취업이 안 되는 화풀이를, 장사가 안되는 화풀이를, 학교와 직장에서 겪는 스트레스의 화풀이를, 자신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음에서 느끼는 불안의 화풀이를,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이는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옮겨 풀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결과 정작 반복을 방지할 수 있는 사태의 근본원인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눈감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것이 지난 1년 우리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던 진짜 이유일지 모른다. 자식을 가슴에 묻는 불행한 경험을 모두 공유해야 비로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그럴 듯한 명분을 내걸면서 개인적인 화를 남에게 옮기고 있지 않은지, 그리하여 너나없이 청맹과니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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