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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산책> 지옥에서 벗어날 개혁책을!

제 360 호 강 명 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등록날짜 [ 2015년05월15일 11시03분 ]
  연암이나 다산의 글을 읽으면 참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살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연암이 「허생전」에서 국가 권력이 없는 아나키(anarchy)한 공동체를 상상한 것이나,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에서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토지의 상한선을 정하고 그 이상의 토지는 국가에서 몰수하도록 한 것은 끔찍할 정도로 근본적이다. 한 사람이 일정한 정도의 재산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니, 사유재산에 제한을 두고자 한 것이 아닌가.

  다산의 ‘여전론(閭田論)’은 토지의 사적 소유를 폐기한다. 누구도 토지를 사유할 수 없고, 오직 노동하여 수확물을 분배받을 권리만이 있다. 성호 이익(李瀷)은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인 생계가 가능한 일정한 토지를 지급하되 그 토지는 영원히 사고팔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토지를 사들인 사람은 발각될 경우 즉시 원소유자에게 조건 없이 돌려주어야 한다. 성호가 제안한 제도의 바닥에 흐르는 것은, 요즘 흔히 말하는 기본소득제의 정신이다.

독점의 폐해를 없앨 근원적 해결책을 제출

  연암과 다산, 성호는 18세기 후반 사족 체제가 처한 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극소수 벌열과 토호들이 정치권력과 토지를 독점하고 대다수 농민이 토지-재산을 상실하게 된 상황을 타개하지 않으면 결국 사족 체제가 몰락할 것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그에 대한 근원적 해결책을 제출했던 것이다. 그 방법은 각각 달랐지만, 결국 농사짓는 농민이 토지를 갖게 하여 그들을 경제적으로 안정시키는 것이야말로 사족 체제를 장구히 유지하는 길이라고 역설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은 실천되지 않았다. 권력을 쥔 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을 리 만무했고, 또 스스로 개혁을 추진할 리 없었다. 또 연암과 다산, 성호의 주장 역시 지식인 내부의 담론일 뿐이었다. 농민을 위한 개혁책이라면서 농민에게는 그것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알릴 생각조차 없었다! 문득 생각해 본다. 만약 그들이 농민을 향해 자신들의 토지개혁책을 선전하고 유포했다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조선은 19세기 내내 비틀거리다가 그렇게 쉽게 식민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다수 국민은 지옥 속에 살게 되었다. 모든 분야에서 관철되는 살벌한 경쟁, 청년실업, 비정규직, 보육·교육문제, 높은 자살률, 노년빈곤, 환경파괴, 핵발전소 문제 등은 우리가 20세기의 피나는 노력을 거쳐 도달한 사회가 사실상 지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옥에서 벗어나 몰수당한 삶을 되찾는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개인의 각성과 노력, 실천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결정적인 수단은 정치적 힘에 있다. 그런데 그 정치란 것이 말씀이 아니다. 예컨대 지난 4월 29일 재보궐선거에서 야당이 참패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야당이 참패한 것은 지금 여당이 잘나서가 아니다. 그들의 수많은 오류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개혁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가?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여당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여당을 비판하고 집권을 바라는 야당은 앞에서 열거한 문제들에 대해 어떤 개혁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가? 과거 연암과 다산, 성호는 근본적이고 근본적 차원의 개혁책이 있었지만,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정치권력이 없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백성 아닌 국민은 선거와 투표란 수단을 갖고 있다. 국민 대다수를 이 지옥에서 건질 개혁책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정치세력, 곧 정당이 있다면, 거기에 투표할 용의가 있다. 그런데 그런 정당은 어디에 있는가?

  선거 때마다 학생들에게 투표의 권리를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이렇다. “찍을 데가 있어야지요.” 나는 요즘 이 대답에 반박할 어떤 근거도, 자신도 갖지 않고 있다. 정말 집권을 하고 싶다면, 다수당이 되고 싶다면, 다른 정당의 실수에 편승만 노리지 말고, 내부적으로 계파싸움으로 서로를 비난하는데 열중하지 말고, 대다수 국민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고통을 해결할 개혁안부터 연구해 널리 선전하시기 바란다. 문제가 너무 어렵다고? 하지만 정치를 하자고 작정했다면,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정치인의 임무다. 이게 쇠귀에 경 읽기 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또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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