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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전라남도지사는 23일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첫 시작점인 구례 석주관(石柱關) 칠의사묘(七義士墓)를 참배했다.
구례 토지면 송정리에 위치한 구례 석주관 칠의사묘는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때 석주관을 지키기 위해 적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의사(義士) 7인과 구례현감 이원춘(李元春)의 묘로 1963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06호로 지정됐다.
정유재란 때 광양에 상륙한 수만의 왜병이 경남 사천, 하동을 거쳐 석주관에 들이닥치자 구례현감이자 석주관만호(石柱關萬戶)였던 이원춘은 중과부적으로 적을 당해내지 못하고, 남원(南原)으로 가 결국 순절했다.
이때 구례의 선비 왕득인(王得仁)이 장정 백수십 명을 거느리고 석주관을 지키려 했으나, 그도 마침내 순절했다. 왜적들이 구례에 들어와 방화․약탈을 자행하자, 구례의 선비 이정익(李廷翼), 한호성(韓好誠), 양응록(梁應祿), 고정철(高貞喆), 오종(吳琮), 왕득인의 아들 왕의성(王義成)은 수백 명의 의병을 모집해 다시 석주관 방어에 나섰다.
1805년(순조 4) 나라에서는 7의사에게 각각 관직을 추증하고, 1946년 지방 인사들이 칠의각(七義閣)을 짓고 숭의각(崇義閣)을 지어 매년 제향하고 있다.
이 지사는 “임진왜란이라는 유사 이래 가장 큰 국란을 당해 호남의 민중, 선비들과 사찰의 승려들까지 의(義)의 기치 아래 모여 나라를 지켰다”며 “우리 후손들이 그 정신을 계승․활용하는데 힘을 모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한편 전라남도는 임진왜란 당시 도내에 산재한 이순신 장군과 호남 민중의 역할 관련 사료를 수집․정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