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에 가면 만나게 되는 큰 탑. 그 아래 이런 글씨가 쓰여 있다. “이뭣고”. 안내판에 따르면,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1,700여 가지의 화두 가운데 ‘부모미생전 본래면목 시심마(父母未生前 本來面目 是甚磨)’라는 것이 있다.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 나의 본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인데, “이뭣고”하며 골똘히 생각하면 ‘진정한 나’를 깨달아 해탈하게 된다 한다. 전라도에 있는 절집에서 경상도 사투리 느낌이 들기도 하는 ‘이뭣고’라는 말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그런데 ‘시심마’는 어쩌다 ‘이뭣고’가 된 것일까.
‘시심마’는 중세 중국어 구어(口語)인 백화체에 기원을 두고 있다. 현대 중국어로 하면, ‘무엇인가’라는 의미의 [shì shénme]쯤에 해당한다. 是甚磨[shì shénme]가 ‘시심마’라는 한국식 한자 발음만이 아니라 ‘이뭣고’라는 ‘한국적 구어’의 형태로 이해되어 온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구어투로 전해진 사유를 ‘현지의 구어투’로 번역한 드문 사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밴댕이에서 가오리까지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대개 한자로 된 문헌과 한자를 사용한 필담으로 지식정보를 소통했다. 그런데 是甚磨[shì shénme]가 ‘시심마’ 혹은 ‘이뭣고’가 되는 과정은 한국 지성사에서 문어와 구어의 차이, 그리고 음가의 차이에 관한 그 나름의 통찰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박지원은 그것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또 ‘개그’로 승화시키기까지 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유명한 『열하일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신을 따라서 중국에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호칭이 있는데, (중략) 나처럼 한가롭게 유람하는 사람은 반당伴當이라고 부른다. 소어蘇魚라는 물고기를 우리말로 밴댕이(盤當)라고 하는데, 반盤과 반伴의 음이 같기 때문이다. 압록강을 건너면 반당은 은빛 모자의 정수리에 푸른 깃을 달고 짧은 소매에 가벼운 복장을 한다. 길가의 구경꾼들은 반당을 가리키며 ‘새우’라고 부르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무장한 남자를 부르는 별칭인 것 같다. 지나가는 곳마다 마을 아이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일제히 ‘가오리 온다, 가오리 온다’ 하고 외치는데 (중략) ‘가오리 온다’는 말은 ‘고려 사람이 온다’는 뜻이다. 내가 웃으면서 “이제 세 가지 물고기로 변하고 마는구만” 하니, 동행하는 여러 사람들이 “무슨 말입니까?” 하고 묻는다. 내가 “조선에서는 밴댕이라고 부르니 이는 소어라는 물고기요, 압록강을 건넌 이래로는 새우라고 부르니 새우도 역시 어류의 하나이며, 오랑캐 아이들이 떼를 지어서 가오리라고 외치니 이는 홍어가 아니던가?” 하니 그들이 모두 한바탕 웃는다.
언어 사이의 균열을 이용한 ‘개그’
밴댕이를 한자로 적으면 보통 소어(蘇魚)라고 쓴다. 그런데 박지원은 굳이 밴댕이라는 말을 한자의 소리를 빌어 ‘반당(盤當)’이라고 적었다. ‘반당(伴當)’은 사신의 수행원을 가리킨다. ‘반당(伴當)’과 ‘반당(盤當)’이 우리말 발음이 같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아무 보직 없이 사신단에 합류한 한량으로서의 자신(伴當)과 급할 것 없이 물속을 유유히 노니는 밴댕이(盤當)를 동일시한 것이다. 밴댕이에서 시작한 ‘개그’는 새우를 거쳐 가오리로 이어진다. ‘가오리 온다’는 것은 ‘고려 사람이 온다’는 말인데, 명나라·청나라 때의 중국인들이 고려라고 말한 대상은 조선이므로, ‘조선 사람이 온다’는 의미다. 고려를 뜻하는 백화 ‘까올리(gaoli)’는 박지원에 의해 가오리, 즉 홍어로 바뀐다. 박지원식 유머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박지원의 ‘개그’에 일행들이 ‘모두 한바탕’ 웃었다지만, 학생들이 박지원의 일행들처럼 웃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개그’를 ‘설명’하려 한 내가 문제인가, 변해버린 웃음 코드와 언어 환경이 문제인가. 그도 저도 아니라면 웃음으로 소통할 만큼의 여유조차 충분치 않은 우리 사회가 문제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새우인가, 무관인가?
구경꾼들이 제복을 입은 박지원 일행을 보고 ‘새우’라고 불렀다는 대목에 주목해보자. ‘새우라고 부른다’는 내용에 해당하는 원문은 ‘칭하(稱鰕)’이니, 번역에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박지원이 압록강을 넘어서자마자 들은 소리(sound)는 어떤 것이었을까. 아마 ‘샤(xia)’일 것이다. 박지원이 ‘샤’, ‘샤’하는 소리를 듣고는 기민하게 ‘샤(xia)’라는 백화 음가를 가진 ‘하(鰕)’, 즉 새우를 연상했음직하다.
구경꾼들이 그렇게 외친 데는 사정이 있다. 그들은 한족이 아니라 만주족이었을 것이다. 만주족들은 만주어라는 자기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샤(xia)’는 만주어로 제복을 입은 무관을 뜻하는 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제복을 갖추어 입었을 박지원 일행을 가리키며 ‘샤(xia)’라고 외치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새우’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 만주족 아이들이 외쳤다는 ‘까올리(gaoli)’라는 말은 백화다. 만일 아이들이 만주어로 말했다면 고려를 뜻하는 ‘솔롱고(solongo)’나 ‘솔호(solho)’, 혹은 조선을 뜻하는 ‘차오히안(choohiyan)’이라고 했어야 옳다. 그러나 아이들은 ‘까올리(gaoli)’라고 외쳤다. 백화의 영향력은 이미 강변에 사는 만주족 아이들에게까지 미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짧은 이야기는 박지원의 유머 감각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눈을 크게 뜨고 보면 거기에 18세기 후반 동북아시아의 언어 지형과 소통 구조에 관한 여러 기호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그런데 여전히 질문이 남는다. 박지원은 그의 유머를 읽게 될 우리 같은 독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