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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한말 호남의병의 길’ 순례기 (2)

김세곤(호남역사연구원장)‘노사학 연구소’ 사단법인화 조속히 이루어져야
등록날짜 [ 2015년06월07일 10시57분 ]

기삼연 묘소를 뒤로 하고, 다음으로 가는 곳은 장성군 동화면 남산리 봉산부락에 있는 노사 기정진 선생 묘역이다. 이곳에는 위정척사 衛正斥邪 기념탑과 노사 선생 묘소가 있다. 


먼저 노사 선생 묘소부터 참배하였다. 묘소 봉분은 평평하다. 묘비에는 ‘조선 노사 기선생지묘, 증 정부인 울산김씨 부좌’라고 적혀 있다.

묘소 왼편에 있는 묘갈비에는 ‘조선 노사 기선생 묘갈명 병서’가 적혀 있다. 문인 정재규가 찬 撰하였고, 문인 오준선이 전서(篆書)를 쓰고, 문인 삼종손 기재가 글씨를 썼다. 기재는 을사오적 암살단의 주역 기산도(1878-1928)의 아버지이다. 기산도는 을사오적 군부대신 이근택 암살을 기도한 의사 義士로, 장인이 녹천 고광순이다. 

일행은 묘소 앞에서 참배를 하고 후학 공연웅이 추모시와 추모문을 낭독하였다. 노사 선생의 학문은 심신함양이었고, 정신은 위정척사라고 추모하였다.  

일행은 위정척사 기념탑에서 종손 기호중의 말씀을 들었다. 위정척사(衛正斥邪)는 정학(正學)인 성리학과 정도(正道)인 성리학적 질서를 수호하한다는 위정(衛正)과, 성리학 이외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사학(邪學)으로 보아 배격한다는 척사(斥邪) 운동이다. 이에 불을 댕긴 이는 노사 기정진(1798-1879)과 화서 이항로(1792-1868)였다. 

 기정진은 1866년 8월16일에 프랑스 이양선의 출몰과 관련하여 아뢰었다. 소위 병인6조소(丙寅六條疏)였다. 이어서 동부승지 화서 이항로도 9월12일에 외적과 화친하지 말고 항전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다.  (이는 고종실록에 실려 있다)

기념탑에는 丙寅六條疏(병인육조상소)가  새겨져 있다. 즉 제단 오른 편탑에는 定廟算(정묘산) 조정의 정책을 확정할 것, 修辭令(수사령)  정령의 난맥을 바로 잡을 것, 審地形(심지형) 지형을 잘 살펴 외적을 방어할 것이 새겨져 있고, 왼편 탑에는 練兵(연병) 군사훈련을 철저히 할 것,  求言(구언) 언론의 자유를 허용하여 많은 의견을 들을 것, 內修外攘(내수외양) 안으로 정치를 잘 하고 밖으로 외적의 침략을 물리칠 것이 새겨져 있다.


한편 위정척사기념탑 아래 공원 왼편에는 1997년에 세워진 노사 기정진 선생 신도비가 있다. 비명은 면암 최익현이 글을 지었고, 글씨는 김응현이 썼다. 

오른 편에는 기우만 · 고광순 · 기정진  의병장의  표석이 있다. 표석에는 의병장의 어록과 약력이 앞뒤로 새겨져 있다. 

먼저 송사 기우만(1846-1916) 의병장 어록을 읽는다. 
人雖死而義不死(인수사이의불사)사람은 비록 죽더라도 의는 죽지 않고 
國雖亡而義不亡(국수망이의불망)나라는 망할 수 있어도 의는 망하지 않는다.

다음은 녹천 고광순 (1848-1907) 의병장의 어록이다.
一死報國 (일사보국)  한 번 죽어 보국하고자 함은
吾所必定 (오소필정)  내 마음에 정한 바이다.

성재 기삼연(1851-1908) 의병장의 어록은 절명시이다.  
出師未捷身先死(출사미첩신선사) 싸움터에 나가 이기지 못하고 먼저 죽으니,    
呑日腹年夢亦虛(탄일증년몽역허) 일찍이 해를 삼킨 꿈은 역시 헛것이었나.      

이윽고 장성군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에 있는 고광순 사당 포의사로 향하였다. 버스에서 필자는 서울 광화문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고광순의 ‘불원복(不遠復) 태극기’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1907년 구례 연곡사에서 ‘머지않아 국권이 회복된다.’는 의미의 불원복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일본 군경과 싸우다가 순절한 고광순. 그의 충의는 역사에 남으리라.

그런데 고광순 사당에 도착하니 문이 잠겨 있다. 별수 없이 사당 뒤에 있는 ‘조선오난 호국충혼탑’만 참배하였다. 충혼탑에서 내려오면서 사당 밖 길에서 녹천 선생에 대하여 묵념을 하였다.  

다음 행선지는 나주 향교이다. 나주로 가는 버스에서 임진왜란 의병장 최경회 장군 후손이 ‘진주 삼장사’ 시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였다. 진주성 삼장사는 누구누구인가? 삼장사 시가 누구의 작품인지에 대하여는 영남과 호남이 상반된다. 이에 대한 역사적 논증을 호남사람들이 주도하여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윽고 나주향교에 도착하였다. 대성전 앞에서 참배를 하고 김봉곤 교수로부터 기우만의 의병 활동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기우만은 고광순 · 기삼연과 함께 의병 200여명을 이끌고 나주 일대의 의병과 함께  호남창의소를 설치하고 의병을 이끌었다.   

마지막 순례지는 기삼연 순절지인 광주공원이다.  기삼연은 1908년 설날 다음날인 2월3일에 광주천변 백사장에서 처형되었다. 아쉬운 것은 처형장소에 대한 안내판이 없는 점이다.

별수 없이 광주공원 안 오층석탑 언덕에서 추모를 하였다.  박래호 성균관 부관장이 아베 정권의 망언을 성토하는 글을  낭독하였고, 후학 오기주가 의병정신 계승하자는 구호제창과 만세삼창으로 오후 6시에 순례를 모두 마무리 하였다.

한 가지 희망은 내년 ‘의병의 날’에도 ‘한말 호남의병의 길 순례’를 하였으면 한다. 그러려면  ‘노사학 연구소’ 사단법인화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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