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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수월정 기록의 오류(2)

지방자치단체장, 역사의 오류 바로잡기 위해 빠르고 정확한 노력 해줘야
등록날짜 [ 2015년07월07일 01시06분 ]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우리사회는 언제쯤이나 구태의연한 세계에서 탈출하여 더할 나위 없이 진취적인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인터넷에 폐해란 예를 들어 말하자면 이렇다.
우리 지역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역사학자이신 이을호박사께서 1989년 2월에 발간한 수은집을 살펴보면 번역이 잘못된 부분이 눈에 자주 띄지만 그 중 크게 두 가지 오류가 보인다.

그 첫째가 수은 강항선생이 퇴계 이황선생의 문하였다고 규정지은 것과 둘째형인 준에게 어렸을 때 학문을 배웠다고 주장한 부분이다. 이런 오류의 확장을 생각해서인지 서문을 통해 이을호박사께서는 ‘고전의 국문화란 입장에서 그렇게 간단히 처단할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대 석학자의 두 가지의 잘못으로 인해 지금 수은 강항선생을 연구하는 학자나 역사학 교수는 거의 이 수은집의 기록을 참고해 오류를 범하고 만다.

먼저 정답을 말하자면 수은선생께서는 율곡 이이의 문하이며, 큰형인 강해에게서 학문을 배워 7세때 맹자를 외우고 8세에 강목을 외워 신동이라 알려지게 된 것이다.

2014년 12월 영광문화원에서 주관한 학술토론회에서 전남대 김 모 교수가 수은 강항선생에 대한 연구도 제대로 안 하고 이러한 잘못된 내용을 그대로 들고 들어와 토론회에서 큰 망신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어디 이 뿐인 줄 아는가?!
지금 인터넷에서 ‘수은 강항선생’을 검색해 보면 거의 이 두 가지 잘못된 내용으로 거의 도배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지금 우리는 이  시대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정답은 최소한 이러한 역사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지방 단체장들이 적극 나서서 빠르고 정확한 노력을 해줘야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수은 강항선생의 자료를 올바르게 세우고 역사의 흔적을 찾기 위해 수은공 종회 족보와 수은집을 토대로 광양시, 보성군, 나주시, 무안군, 고창군, 담양군을 공문을 미리 보내고 문화관광과를 순회했다.
담당공무원의 적극적인 모습과 그 지역 문화제에 무관심한 경우로 크게 대별되었다.

또, 정답을 보여줘도 전혀 수정조차하지 못하고 억지주장으로 기념사업회와 팽팽한 대립의 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게 역사와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감수할 용의가 있다.

그래서 이 기회에 필자는 특이한 관점에서 독자에게 먼저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는 수월정기문을 소개해 드려 보기로 했다.
한국고전종합DB를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고 ⇒ 한국문집총간의 메뉴바에서 ⇒ 검색창이 나오는데 거기에 수월정기라고 입력하면 검색결과 2개의 수월정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눈 여겨 볼 것은 역시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송강집에서 나온 수월정기인데 송강집의 제작년도는 1674년도라고 나오고, 수은집은 1658년으로 제작년도가 나온다. 참고로 송강 정철은(1536~1593)출생으로 수은 강항선생보다 출생년도로 봐도 31년 이 더 앞시대의 선비로 수은 강항선생은(1567~ 1618)이기 때문인데 오히려 송강집이 14년이 더 늦고 송강이 타계하신지 무려 81년만에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몇 개의 단어를 빼고는 두 수월정기가 거의 비슷한 문장으로 쓰여져 있다는 것이다.
다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강항선생의 兵火十年。文物一空。而水月則依舊也。世降俗末。人心不古。와 유배만 당했지 전쟁을 겪지 않은
송강의 兵火十年。文物一空。而水月則依舊也。世降俗末。人心不古는 그 시대에 뭘 말씀하시는 걸까?

요새 신 모작가의 표절로 사회가 온통 시끄러울 정도로 시비거리인데 이 두 선비 중 한 분은 분명코 후대의 큰 잘못으로 인해 표절로 비치고 이 대쪽같은 선비의 자존심을 누가 이토록 훼손하고 있는지 자뭇 그 배후가 궁금하다.

이렇듯 이미 풀린 문제이지만 오늘은 판단을 독자께 맡기며 모두가 공유하기 위해 두 선비의 수월정기를 아래에 소개하며 필을 접는다.

                                                         - 아             래 -

송강정철 선생 수월정기
士大夫之進不得有爲於斯世。棄位而巷處者。必占名山麗水之濱。池館園囿之樂。一以爲淸閒寂寞之娛。一以敍憂時戀闕之情。歐陽公之上。杜祁公之睢陽。皆是已。前錦牧光山後人鄭侯渫。年五十而棄於世也。遂求先大夫玉川先生之別業於光陽。距先廬四十里而居之。選勝築亭。名曰水月。余觀夫南方之山。嵬然高者以千數。而白雲爲最奇。南方之水可勝舟者以千數。而蟾江爲最大。以白雲之東麓爲屋上。而以蟾江之上流置屋下。則形勝有不可論也。而況天下之三神山。方丈居其一。煙火食者之生世間。聞此山之名者亦罕矣。其於起居飮食。早夜相對。爲如何哉。左嶺右湖。控引島巒。來船去舳。雲飛而鳥逝。官津野墟。魚鱗輻湊。渭川千畝。鄴水朱華。鶴洞朝嵐。岳陽暮煙。躑躅成山。火雲成峯。霜落而千林紅。氷塞而長川白。千態萬象。畢集几房之下。則水月之所以選勝也。

兵火十年。文物一空。而水月則依舊也。世降俗末。人心不古。而水月則猶昔也。市道日巧。一錢且涌。而水月則無價也。棄枯集菀。門雀可羅。而水月則不遐也。逝者如斯。而未嘗往也。盈虛者如彼。而卒莫消長也。浮光躍金。靜影沈璧。而水得月而益淸。月得水而益白。直與侯之胸次。瑩澈同符焉。則水月之所以命名也。余雖不獲登侯之亭。誦侯之歌。見侯之書。粗得水月之萬一。而若侯之方寸。則余固知已。故於是乎書。辛 缺 秋旣望。烏川鄭某。記。


수은 강항선생 수월정기
士大夫之進不得有爲於斯世。棄位而巷處者。必謀明山麗水之濱。池館苑囿之樂。一以爲淸閑寂寞之娛。一以抒憂時戀闕之懷。六一翁之於穎上。杜祁國之於睢陽。皆是已。前牧使光州鄭侯。年五十而棄於時。遂求先大夫玉川先生之別業於光陽。距先廬十里許而居之。選勝爲亭。以水月爲名焉。余觀夫南方之山。巍然高者以千數。而白雲爲最奇。南方之水。可行舟者以十數。而蟾江爲最大。以白雲之東麓爲屋山。而以蟾江之上流置屋下。則勝絶有不暇論也。而況天下之三神山。方丈居其一。煙火食人之生世間。聞方丈之名者亦罕矣。其於起居飮食。早夜相對者。何如哉。左嶺右湖。控引島蠻。商舡之所走集。市賈之所輻湊。岳陽朝嵐。鶴洞暮煙。躑躅成山。火雲成峯。霜落而千林紅。氷塞而長河白。千態萬狀。畢集於几席之下。則此水月之所以選勝也。

兵火十年。文物一空。而水月則依舊也。世降俗末。人心不古。而水月則猶前也。市道日巧。一錢俱湧。而水月則無價也。棄枯集菀。門雀可羅。而水月則不遐也。逝者如斯而未嘗往也。盈虛者如彼而卒莫消長也。浮光躍金。靜影沈壁。水得月而益淸。月得水而益白。直與侯之胸采。上下乎同符。則此水月之所以得名也。余雖不獲登公之亭。而幸嘗竊誦公之歌。見公之書。已得水月之大槩。而若公之心則余固知之。於是乎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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