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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가윤동주 유고 시집과 강처중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강처중 영화 <동주>로 인하여 재평가 받아
등록날짜 [ 2016년04월14일 00시55분 ]

 윤동주 열풍이다. 영화 <동주>가 관객 110만 명을 돌파하였고, 윤동주 시집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다.

1948년 1월30일에 정음사는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간행하였다. 여기에는 윤동주의 연희전문학교 후배 정병욱이 가지고 있던 윤동주 자선시집의 시 19편과 연희전문학교 문과 동기 강처중이 보관한 시 12편 도합 31편이 실렸다. 

 유고시집 출간에 앞서 경향신문 기자 강처중은 윤동주의 시를 세상에 알렸다. 1947년 2월13일자 경향신문에 윤동주의 시 ‘쉽게 씌여진 시’가 주간(主幹) 정지용의 윤동주 소개 글과 함께 실렸다. 이 시는 일본 유학중에 윤동주가 강처중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시 5편중 하나이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중략)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6.3.

이 시 뒤에 윤동주의 연전 졸업앨범에 있는 사각모를 쓴 사진이 실렸고, 정지용은 윤동주의 생애를 소개하면서 “그의 비통한 시 10여 편은 내게 있다. 지면이 있는 대로 연달아 발표하기에 윤군보다도 내가 자랑스럽다”라고 적었다.

경향신문은 1947년 3월13일에 윤동주의 시 ‘또 다른 고향’을 소개했다.
1947년 7월27일에는 세 번째로 시 ‘소년’을 소개했다. 그런데 경향신문의 윤동주 시 소개는 이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정지용도 1947년 7월9일에 경향신문 주간을 사직하고 이화여대 교수로 복직하였다. 


한편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2주기인 1947년 2월16일에  강처중 · 정병욱 · 윤일주 · 유영 등 30여명이 서울 소공동 ‘플라워 회관’에 모여 윤동주와 송몽규를 기리는 추도회를 가졌다. 이 추도회에 정지용도 특별히 참석했다. 이들은 윤동주 3주기 이전에 유고시집을 발간키로 하였다. 

시집 출간을 주도한 이는 강처중이었다. 당시에 정병욱은 서울대 국문학과 4학년이었다. (송우혜, 윤동주 평전, 2016, p 487) 

강처중은 정지용에게 시집의 서문을 부탁하였다. 강처중은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를 정지용에게 데리고 가서 윤동주의 집안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듣게 했다. 

그러면 정지용의 서문을 읽어보자.  

서(序) – 랄 것이 아니라

(전략) 아직 무릎을 꿇을 만한 기력이 남었기에 나는 이 붓을 들어
시인 윤동주의 유고에 분향하노라. (중략)
내가 시인 윤동주를 몰랐기로소니 윤동주의 시가 바로 “시 詩”고 보면 그만 아니냐?  (중략)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에 우수한 것이겠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고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일제시대에 날뛰던 부일문사(附日文士)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 뿐이나, 무명(無名)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限)이 없는 시(詩)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후략)
1947년 12월28일   지용

한편 강처중은 유고시집의 발문을 지었는데, 그는 시인 윤동주의 사람됨을 말하면서 “동주의 시가 한 책이 되어 길이 세상에 전하여지려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강처중은 윤동주를 일약 민족 시인으로 발돋움시켰지만, 1950년 6.25 전쟁 이후 정지용과 함께 금기인물이 되었다.  ‘남로당의  실세’로 활약한 강처중은  간첩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고, 정지용은 월북했다. 

그리하여 1955년 2월 윤동주 10주기 기념 증보판 시집이 정병욱과 윤일주의 손에 의해 출간될 때 정지용의 서문과 강처중의 발문은 아예 삭제되기까지 했다.

다행히도 ‘향수’의 시인 정지용은 1988년에 해금되었고, 강처중은 영화 <동주>로 인하여  재평가를  받았다.      

윤동주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그의 시를 지켜준 이들이 여럿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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