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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고종 즉위 40주년 (4)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902년 음력 9월 17일(양력 10월 18일)에 경운궁서 즉위 40돌 경축식
등록날짜 [ 2021년06월15일 11시23분 ]

1902년 2월 8일(음력 정월 초하루)에 고종은 중화전에서 진하(陳賀)를 받고 사면령을 반포했다. (고종실록 1902년 2월 8일 1번째 기사)   

"짐은 하늘의 보살핌과 조종(祖宗)의 도움을 받아 왕위를 이어받고 세상을 다스렸는데 날마다 정사가 많아서 왕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러므로 살얼음을 밟듯이 감히 안일하게 지내지 못하였다.


중도에 간고한 일을 많이 겪었으나 몹쓸 운수를 좋은 운수로 바꾸어 비로소 황제의 칭호를 받은 다음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조상을 종묘(宗廟)에 배향(配享)하였다. 모든 예법이 구비되어 귀신과 사람이 화합하였으며 나라는 오래되나 운수는 새로워지고 사직(社稷)의 운명이 그 덕으로 장구하게 되었다.

고종항제 출처: Public domain

오늘까지 내려온 그 상서로운 일은 어찌 덕이 없는 짐이 이룩한 것이겠는가? 지난번 동지 때 황태자가 상소를 올려, 짐이 51세가 되고 즉위한 지 40년이 되는 것은 나라가 생긴 이래로 드문 경사라고 하면서, 열조(列朝)가 이미 시행하여 온 예법을 원용하여 온 나라 사람들의 한결같은 마음을 따라서 연회를 차려 의식을 가지자고 거듭 청하였는데 그 간절한 정성이 갈수록 더욱 절절하였다.

짐은 타고난 지극한 효성과 부모의 장수를 기뻐하는 간절한 정성에서 경사를 만나면 기쁨을 표시하는 것은 인정과 예법으로 보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올해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신음소리가 높고 나라의 재정이 고갈되고 대농(大農)들도 지탱하기 어려운 형편에서 밤낮으로 걱정하다 보니 비단옷에 쌀밥을 먹어도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때에 연회를 벌이는 일을 무슨 겨를에 의논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거듭 아뢰는 간절한 정성을 이해하여 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저 경사를 축하하는 절차만 윤허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천지와 종묘 사직에 삼가 고하고 정월 초하룻날 전(殿)에 나아가 진하를 받음으로써 하늘과 조종이 경사를 베풀어 준 데 보답하고 온 나라 신하와 백성들의 바람에 부응하였다.


이런 큰 경사를 만나면 의당 사면령을 내리는 은택을 베풀어야 할 것이니 시행해야 할 사항을 아래에 조목별로 열거한다. (중략) 온 나라가 경사를 함께 즐겨야 할 것이니, 천하에 선포하여 다 들어서 알게 하라."


2월 13일에 고종은 의정부에서, ‘탁지부가 청의(請義)한  내진연(內進宴) 연회와 외진연(外進宴) 연회 때, 진찬소(進饌所)의 비용 31만 9,811원(元)을 재가했다. 고종은 참 알 수 없다. 경축 진하만 받겠다고 해놓고,  이제는 내진연 · 외진연 예산도 재가한 것이다.  

3월 5일에 고종은 중화전에 나아가 또 다시 진하를 받고 대사령을 다시 반포했다.  "상고하건대, 황제의 집안에서 공덕이 후세에 전하면 시호(諡號)를 올리고 장수하여 경사를 축하하자면 연회를 차리는 것은, 훌륭한 미덕을 칭송하고 높은 칭호를 내걸어 끝없이 후대에 보이기 위한 것이다.


(중략) 지난번에 동궁이 상소를 올려 짐의 나이가 51세가 되고 왕위에 오른 지 40년이 된다고 하면서 존호를 올리고 연회를 차리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이 어찌 그럴 만한 시기이겠는가?

백성들이 굶주리고 나라의 저축이 거덜 나서 근심 걱정으로 비단옷에 쌀밥을 먹어도 마음이 편안치 않으니 의문(儀文)과 전례(典禮)는 말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그래서 사양하다가 거듭 아뢰기에 경사를 선포할 것에 대해서만 윤허하였는데 또 뒤이어 추위를 무릅쓰고 모든 관리들을 거느리고 대궐 뜰에서 청하면서 여러 날 동안 간절한 성의를 더욱더 보이기에 할 수 없어 억지로 따르기는 하였으나 본심은 아니어서 짐이 실로 부끄럽게 여겼다.


(중략) 음력 정월 18일(양력 2월 25일)에 황태자가 옥책과 금보를 올려 짐에게 ‘건행 곤정 영의 홍휴(乾行坤定英毅弘休)’라는 존호를 더 올렸고 이어 25일에 명성 황후에게 ‘성덕(誠德)’이라는 존호를 소급하여 올렸다. (중략) 아! 짐에게 경사가 생기면 온 나라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법이다.


덕음(德音)을 반포하니 봄날 같은 따사로운 은택을 베푸는 데 순응하고 다같이 장수하여 온 나라 백성들에게까지 그것이 미치도록 천하에 포고하니 다 들어서 알게 하라." (고종실록 1902년 3월 5일 1번째 기사)
그런데 2주 후인 3월 19일에 고종은 가을에 거행할 즉위 40년 기념 경축식을 준비하라는 조령을 내렸다.

 
"짐은 하늘과 조종(祖宗)의 도움과 명을 받아 온갖 복을 누렸는데 올해는 짐이 왕위에 오른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동궁이 부모가 장수하는 것을 기뻐하고 세월이 흐르는 것을 아쉬워하는 정성으로 나라에 드문 이런 경사를 맞이하여 연회를 차리도록 여러 번 청하였는데 그 성의가 간절하였으며, 대소 신료들도 일치한 목소리로 굳이 청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올가을에 등극한 지 40년이 된 것을 경축하는 예식을 거행하려고 한다. 응행 의절(應行儀節)을 의정부, 궁내부, 예식원, 장례원(掌禮院)에서 서로 의논하여 결정한 다음 마련해서 들이게 하라." (고종실록 1902년 3월 19일 1번째 기사)

4월 24일에 고종은 올해(1902년) 음력 9월 17일(양력 10월 18일)에 경운궁에서 즉위 40돌 경축식을 가지도록 조령을 내렸다. (고종실록 1902년 4월 24일 1번째 기사)

고종은 참으로 이중적이다. 백성들이 굶주리고 나라의 저축이 거덜났다고 처음엔 연회를 거절하더니, 이제는 내진연과 외진연은 물론이고 경축식까지 거행하라고 지시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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