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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고종 즉위 40주년 (7)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902년 5월 27일 함녕전서 기로소 당상(耆老所 堂上)들에 연회
등록날짜 [ 2021년06월18일 14시59분 ]

1902년 5월 27일에 고종은 함녕전에서 기로소 당상(耆老所 堂上)들에게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고종실록 1902년 5월 27일 1번째 기사)

참석자는 황태자와 영왕, 의정 심순택, 특진관 조병세, 영돈녕원사 윤용선, 기로소 당상 조병식·이순익·서상우·이용원·엄세영·정해륜·김석근·서상조·송민수·한성근등이었다. 연회에는 술과 과일, 음식 등이 나왔고, 악공들이 연주하고 무동(舞童)들이 춤을 추었다. 
고종항제 출처: Public domain

이어서 고종은 기로소에서 연회를 베풀 것을 명했다.

 "오늘의 연회는 사실 옛 규례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고 연회 후에 전각 앞에서 연주하던 악공(樂工)들을 기로소에 보내주는 것도 역시 규례이다. 기로소의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나머지 음식을 가지고 가서 기로소에서 연회를 벌이게 하라." (고종실록 1902년 5월 27일 2번째 기사)  

5월 30일에 고종은 함녕전에 나아가 외진연(外進宴)을 받았다.

“상(上)이 익선관에 황포(黃袍)를 갖추고 어좌에 오르자, 헌가(軒架)가 ‘보허자(步虛子)’를 연주하였다. 황태자 이하 종친과 문무 관리 3품 이상으로 자리에 있던 자들이 국궁(鞫躬)하고 사배(四拜)하였다.

전선사 제조가 주기(酒器)를 올리자, 헌가가 ‘여민락(與民樂)’을 연주하였다. 시접(匙楪)을 올리자, 등가(登歌)가 ‘순천개운지곡(順天開運之曲)’을 연주하고 무동(舞童)이 들어와 ‘제수창(帝壽昌)’을 추었다.

전선사 제조가 대탁(大卓)을 올리고 또 찬안(饌案)을 올린 다음 또 별행과(別行果)를 올리자, 등가가 ‘천보구여지곡(天保九如之曲)’을 연주하였다. 근시(近侍)가 화반(花盤)을 봉진(奉進)하니, 등가가 ‘천자만년지곡(天子萬年之曲)’을 연주하였다.


염수(鹽水)를 올리자, 등가가 ‘구오강녕지곡(九五康寧之曲)’을 연주하고 무동이 들어와 ‘봉래의(鳳來儀)’를 추었다. 소선(小膳)을 올리자 황태자 이하가 국궁하고 사배하였다.

악사(樂師)가 ‘천향(天香)’ 악장(樂章)을 부르자, 황태자가 제1작(第一爵)을 올리고 이어 사배하였으며 종친과 문무의 관리들이 국궁하고 사배하였다. 치사관(致詞官)이 치사문(致詞文)을 읽었다. 


‘황제의 덕이 매우 밝고 업적이 빛나니 기나긴 운수를 내려주었으며 하늘의 도움으로 좋은 상서가 모여 해와 달처럼 끝없이 장수하고 태산 반석처럼 운수가 장구합니다.

천 년 만에 있는 훌륭한 거사는 선대의 경사를 더욱 빛내고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헌수의(獻壽儀)를 올립니다.’

치사문(致詞文) 읽기를 마치자 승제관(承制官)이 제명(制名)을 선포하기를, "술잔을 들어 축하하는 때이니 황태자와 이 경사를 함께 하리라." 하니, 등가가 ‘수요남극지곡(壽曜南極之曲)’을 연주하고 무동이 들어와 ‘헌선도(獻仙桃)’를 추었다.

탕(湯)을 올리자, 등가가 ‘만년장춘지곡(萬年長春之曲)’을 연주하였다. 만두를 올리자, 등가가 ‘천록영창지곡(天籙永昌之曲)’을 연주하였다. 탕을 올리자, 등가가 ‘표정만방지곡(表正萬邦之曲)’을 연주하였다. 차를 올린 다음 황태자 이하가 국궁하고 사배하였다.

반수(班首)인 의정 심순택이 제2작을 올리자, 심순택 이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국궁하고 사배하였다. 승제관(承制官)이 제명을 선포하기를, "경들의 술잔을 공경히 들라." 하자, 등가가 ‘풍운경회지악(風雲慶會之樂)’을 연주하였다.

특진관 조병세가 제3작을, 영돈녕원사 윤용선이 제4작을, 완평군(完平君) 이승응이 제5작을, 학부 대신 민영소가 제6작을, 참정 김성근이 제7작을, 내부 대신 이건하가 제8작을, 특진관 김영목이 제9작을 올렸는데, 모두 위와 같은 의식으로 하였다.

등가가 ‘오만사년지곡(於萬斯年之曲)’을 연주하고 무동이 들어와 ‘몽금척(夢金尺)’을 추었다. 황태자 이하 종친들과 문무관이 국궁하고 사배하니, 등가가 ‘만수무강지곡(萬壽無疆之曲)’을 연주하고 무동이 들어와 ‘연백복지무(演百福之舞)’를 추었다.


찬의(贊儀)가 ‘산호(山呼)’를 창(唱)하니 황태자 이하가 공수(拱手)하여 이마 위에 올리고는 ‘만세, 만세’를 외치고 다시 산호하니 "만만세"를 외쳤다.”(고종실록 1902년 5월 30일 1번째 기사)  

다음날인 5월 31일에는 함녕전에서 내진연(內進宴)을 행하였다. 제1작(第一爵)은 황태자가, 제2작은 황태자비가, 제3작은 영왕(英王)이, 제4작은 연원 군부인(延原郡夫人)이, 제5작은 정경 부인 한씨가, 제6작은 정부인(貞夫人) 홍씨가, 제7작은 정부인 이씨가, 제8작은 종친의 반수(班首)인 완평군 이승응이, 제9작은 척신(戚臣)의 반수인 특진관 김석진이 올렸다. 이어서 야진연(夜進宴)을 행하였다. (고종실록 1902년 5월 31일 1번째 기사)

그런데 황현은 저서 <매천야록>에 이렇게 적었다. “고종이 기로소에 들었다. 이것은 숙종과 영조 전례에 의한 것이다.  임금은 영수각에 참배하고 양로연(養老宴)을 베풀었다. (중략)


 바야흐로 양로연을 치르면서 연일 북을 치고 풍악을 즐기므로 백성들은 궁중으로 기와 조각을 던졌다. 이에 별입시(別入侍)들은 별원(別院)으로 장소를 옮기자고 청하였는데, 고종은 그때까지 투석사건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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