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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고종 즉위 40주년 (10)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군함 양무호 사기 사건
등록날짜 [ 2021년06월23일 10시22분 ]

1903년 4월 15일 제물포에 대한제국 최초의 군함이 입항했다. 군함은 입항 전부터 관심이었다. 2월 9일에 '황성신문'은 특종을 실었다. “소문을 들은즉, 정부가 일본인과 계약하고 군함 한 척을 구입한다는데, 그 가격은 50여 만원이라 하고 신품 여부와 톤수는 아직 모른다더라.”

당시는 1월 25일에 군부대신 신기선이 일본 미쓰이물산과 군함 도입  계약을 완료한 상태였다.

3월 18일에 황성신문은 “황제 폐하가 군함을 '양무(揚武)'라고 명명했다. 배 이름은 카치다테마루(勝立丸), 총톤수 3435t에 263마력짜리 엔진을 달고있다.”는 기사도 냈다. 

고종항제 출처: Public domain

제물포에 입항 며칠 뒤에 황성신문 기자가 양무호에 올라가 취재를 하였는데 4월 25일의 기사는 ‘고물 배를 고가에 매입했고, 해군이 사용하기 곤란하다’는 폭로성 기사였다.    

“신제품이 아니오, 기십 년 전 일본의 고물인데 누차 파손돼 일본해상에 세워뒀던 배를 정부가 고가에 매입했더라. 해군이 사용하려면 본래 노후되고 파손된 물건이라 곤란하다더라.”도대체 양무호는 어떤 군함이었나?

양무호는 영국이 1881년에 건조한 길이 103m, 3,432톤급 증기 화물선 팰러스(Pallas)호였는데 미쓰이 물산이 청일전쟁이 발발한 1894년에 25만엔에 구입하여 ‘카치다테마루(勝立丸)’로 명명(命名)하고, 9년간 써먹은 석탄 운반선이었다.

그런데 미쓰이 물산은 이 화물선에 일본 군함에서 떼어낸 구식 대포(80mm) 4문과 소포(5mm) 4문을 갑판에 장착하여 대한제국에 군함으로 팔아먹은 것이다. 아무리 화물선을 전투용으로 개조했다지만 도저히 군함이라고 볼 수 없었다. 화물선에 대포를 단다고 전투함이 되는 것인가? 

더구나 이 배는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들어 미쓰이 물산도 골치를 앓은 배였다. 미쓰이 물산 중역 회의록에는 “이 배는 워낙 유지비가 많이 들어 화물선으로 쓰기에는 채산성이 많지 않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대한제국은 이런 고물 화물선을 미쓰이 물산이 1894년에 구입한 25만엔보다 두 배나 비싼 일화(日貨) 55만엔(한화 110만원, 오늘날로는 약 440억원)에 구입한 것이다. 이 돈은 1903년 국가 예산(1,076만원)의 10.2%, 군부(軍部) 예산(412만3천원)의 26.7%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이러자 6월 1일자 황성신문은 ”한 명의 수병도 없이 군함을 사들여 재정을 낭비했다.”고 비판했다. 사실 그랬다. 양무호는 하루 43톤에 달하는 석탄 소비량을 감당하기 어렵고, 기관 고장도 잦아 바다에 나가는 날보다 항구에 묶여 있는 날이 더 많았다.

한편 양무호 구입 사건은 주한 외국공관의 비웃음을 샀다. 주한 러시아 외교관은 “고종이 일본의 국제무기거래 사기극에 속았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또한 독일 신문에도 크게 보도되어 국제적 망신을 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1903년 1월 25일에 군부대신 신기선과 미쓰이물산을 대신한 임시대리공사 하기와라 모리이치는 군함 구입 계약을 하면서 계약 부속 명세서에 다음 내용을 명기했다. 

“군기(軍器)는 적당히 완비할 것, 순양함 혹은 연습함의 목적에 변통(變通)함을 위함. 식당에는 미려(美麗)한 서양 요리 기구 30인분, '사령관 이하 함장 사관 25인 침구는 화려한 서양 물품으로 완비할 것, 각 구경대포 실탄 외에 예포(禮砲) 연습용 공탄과 소총 탄환도 적당히 준비할 것, 접객실을 특설하여 대한국 황실 경절 때 봉축에 사용”

'변통(變通)'함을 위한 것이었으니 정부는 이 배가 신품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다. '미려한 서양 요리 기구'와 '화려한 침구'가 조건이고, 무기는 '적당히' 완비하고 예포용 공포탄 또한 적당히 두라 했으니 의전용으로도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고, '접객실을 특설하여 대한국 황실 경절 때 봉축 사용'은 1903년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 경축식을 겨냥한 행사용 아니었나 싶다. 1902년 10월 18일에 하려던 경축식은 전염병으로 연기되어 1903년 4월 30일로 정해졌다.  

미국 공사 알렌은 이렇게 기록했다. '1903년 1월 군부대신 신기선이 약 55만엔 상당 전함(戰艦)을 일본으로부터 구입하는 발주 계약을 체결함. 이는 고종 즉위 40년 칭경예식을 위해 발주한 것임.'(알렌, '근대한국 외교사연표', 19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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