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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의 칼럼>수은 강항의 역사적 현장을 직시(直視)해 보다!(광주향교 편)

선비는 천성의 적통잇고 화민 성숙함에 학문으로 세상을 3대(夏·商·周)의 순풍으로 방가의 빛이 돼 교도의 뜻 이루어지소서!!
등록날짜 [ 2021년08월26일 09시29분 ]

강항선생은 수은집에서 광주 향교의 위치를 “원래 향교는 옛날 들 밖에 있었는데 이따금 호랑이의 화가 근심거리가 되어서 궤환(闠闤 : 市門)으로 옮기고...” 시문(市門)으로 옮겨 왔음을 상량문을 통해 말한다.


어느 지역신문에서는 시문(市門)이 있었던 곳이 어디냐에 초점을 맞추어 밝혀냈는데 시장이 열리는 곳을 주목했다. 시문(市門)을 찾던 중 광주 5일시장이 열맀던 곳에 시리(市里)가 있음을 알고 금남로 4가역 근처 충장로 3~4가 광주극장쪽에 광주향교가 있었다고 했다.


이어서 “성색聲色이 법석이고 보니 유두(油頭 : 기름 바른 여자의 머리)가 사람들을 더럽힘이 탈이었다. 다행히 노수령(老郞)이 뒤늦게나마 와서 陽을 향한 吉土를 잡았도다...” 라고 말하면서 지금의 이곳 중앙로 105번길(서동)로 이전해 옴을 서술해 알려오고 있다.


이러한 상량문을 볼 때 실기(實記)적 문학에 대한 중요성을 수천 번 강조해도 전혀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호남유림의 산실 광주향교

광주향교는 1985년 2월 25일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 1398년(태조 7)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의 교육과 백성의 교화를 위하여, 서석산(瑞石山) 아래에 창건되었으나, 1488년(성종 19)에 홍수로 현감 권수평(權守平)이 현재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타버렸고, 현재 건물은 후에 중건(重建)한 것이다.


1974년 대성전을 보수 ·단청하였고, 1976년 동 ·서재와 1978년에 명륜당을, 1981년에 담장 등 외관을 수리하였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비각·동무(東廡) ·서무(西廡) ·동재 ·서재·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조성되어 있고, 5성(五聖), 송조 6현(宋朝六賢) 및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현재는 봄,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분향만을 한다. 이 지방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189종 306책의 경서와 문집류가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광주향교 [光州鄕校] (두산백과)


현재 광주 향교내 각 건물의 명칭은 아래와 같다.

 대성전, 명륜당, 동.서무, 동.서제, 내 3문, 외 3문, 양사제가 각각 위치하고 있으며 제향일은 춘추 2회이며, 음력 2월 상정일과 8월 상정일에 호남의 유림들이 모여 집전(執典)한다.



광주향교 상량문(·光州鄕校 上梁文)원문

기술하노니 前萬古 後萬古에 中尼보다 성한 분이 없었기에 春上丁 秋上丁에 성한 예를 거행한다. 제계하고 제사를 받드니 비록 天子라도 南面의 尊을 굴하게 되고 혈기있는 자 모두 존하고 친하니 華夏로부터 外夷의 먼데까지 통하도다.

하물며 황사(?舍 : 校官)는 풍화의 근본이니 국가 치도의 낮고 높음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학교는 3대(三代 : 夏商周)가 같이 했던 바이므로 4교(四敎 : 詩書禮樂)를 세운 것이오. 사람이 靈長이 되는 것은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로 주에는 術이 있고 遂에는 序가 있고 家에는 塾이 있고 黨에는 庠이 있나니(術序塾庠은 모두 校名) 이미 鄕郡의 3물(六德 · 六行 · 六藝)로 흥하였고 동에는 부모를 尊尙하고 서에는 현인을 존상하고 남에는 年齒를 존상하고 북에는 貴를 존상하나니 그래서 또 京師의 4문(四門)을 설치하였다.


載籍이 昭然하여 流來한지가 오래다. 오직 기전(箕甸 : 箕子朝鮮)의 문물은 禹蹟의 산천과도 같도다. 내가 東周를 세우리라 하셨기에 일찍이 8조의 교훈을 받았고 선비들 중 북학(北學 : 中國文物을 배움)하는 자들이 많이 천재(千載)의 전함을 얻었도다.


聖朝에 미쳐와서 淸化에 목욕을 했다. 성조(聖祖 : 太祖)가 말을 쉬게 하고(戰馬를 풀어놓음) 도를 논함에 생원 몇 백 명을 더 늘렸고 여러 제후들이 임옹(臨雍 ; 成均館)에서 노선생께 절을 하니 교문에서 관청한 사람이 수억만을 헤아렸다. 州縣까지도 배움이 있지 않는 곳이 없어 교양하기를 각기 方途를 다하였다.


菁菁한 풀이 언덕에 있듯이 호걸들이 많이 양성 되었고 쟁쟁하게 귀에 가득하니 곳곳에 현송(絃誦 : ?琴?詩)의 소리로다. 그 중에도 5현(五賢)같은 眞儒는 모두가 일시의 선각자이다. 하물며 호남은 인물의 府庫요 실로 해외의 염낙관민(?洛關閩)이라 光山은 虎頭의 주(州 : 만호의 주)요, 地望은 순유(鶉維 : 南道)의 으뜸이다. 瑞石山은 우람하게 뻗쳐와서 萬丈으로 벽이 서 있고 極樂江은 크고 깊어 굽이쳐서 천 고을을 안고 간다.


악(?)의 신은 나라의 기둥이오, 地靈은 인걸들을 낳았다. 奇高峯의 바른 학문은 西洛의 眞源이오, 朴訥齊의 重名은 북두요 喬嶽이다. 충신·효자가 모두 한 가정 속에 모여졌고 名卿. 鉅公이백리 안에서 배출되었다. 西河의 풍미(風味 ; 子夏所居)와 같고 남쪽의 波瀾을 진압했다.


이것이 모두 敎學의 공이오, 어찌 산천의 빛만 되겠는가. 원래 향교는 옛날 들 밖에 있었는데 이따금 호랑이의 화가 근심거리가 되어서 궤환(闠闤 : 市門)으로 옮기고 보니 시문이 이에 가까움을 어찌하리오. 聲色이 법석이고 보니 유두(油頭 : 기름 바른 여자의 머리)가 사람들을 더럽힘이 탈이었다. 다행히 노수령(老郞 : 老?의 守?)이 뒤늦게 나마 와서 陽을 향한 吉土를 잡았도다.

옛것을 그대로 쓰면 어쩌리오마는 형편상 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新廟를 원하는 자는 들으라하니 선비가 모의하지 않고 화합이 되었다. 더럽고 시끄럽기 여러해 만에 좌에 감옥, 우에 창고를 면하였고 不日로 경영하니 어찌 위의 비와 곁의 바람을 근심하리오.


그런데 어찌 부자의 몇길(?)이나 되는 담이 갑자기 醜奴의 일거(一炬 : 한번의 횃불)의 火를 당할줄 알았으리오. 사황(絲篁 : 樂器)고 변두(籩豆 ; 祭器)가 잿더미 속에 없어지고 殿堂고 室房이 모조리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博士는 경을 펼칠 땅이 없게 되고 後生은 어디가서 덕을 살피리오.


斯文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우리 제후가 하늘에서 떨어졌도다. 냉풍(冷風 : 和風)을 통하니 북벽에는 눈썹을 찡그린 아낙이 없고 令함이 시우(時雨 : 때맞춰오는 비)같아 南畝에는 손을 놀린 사람이 없도다. 東魯의 문명을 일으키고 西蜀의 儒化 西蜀儒化 : 文翁이 西蜀太守가 되어 학교를 세우고 儒化을 장려하여 治化가 대성하였음.


를 일으켰도다. 여러유생을 불러다가 文廟가 없는 실상을 알고 깜짝 놀랐으며 여러 기술자에게 명하여 재목을 모으게 하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힘을 썼다. 심(尋 : 八尺)도 재고 자(尺)도 재니 新甫의 동백이요 조래(徂徠 : 新甫·徂徠는 中原의 名山)의 소나무며, 꿩도 같고 날을 듯도하니 離婁의 줄이요 公輸의 먹이라(婁는 明目人, 公輪는 巧한 者) 마치 아비의 일에 아들이 오는 듯 하고 어렴풋 神이 만들고 귀신이 설치한 듯하다. 室을 완성함이 기일이 있으니 영을 모실 날이 가깝도다.

삼가 짧은 曲을 드려서 큰 들보를 올리노라.


들보를 동으로 던지면 부상(扶桑 : 日出處)의 맑은 햇살 산에 비춰 빨갛다. 집집마다 絃歌소리 봄뇌성이 인듯하니 進學함이 날마다 功效있으리.
들보를 서로 던지니 海門 천리 저쪽으로 靑州 齊國 접하였도다. 강·하·회·제(江 河 淮 濟)가 물이랄 수 없으니 밤낮으로 구덩이(科)를 채워 가는 길을 거릴낄 것 없다.
들보를 남으로 던지면 밝은 호수 한 구비가 쪽만 같도다. 늦은 봄 3월에 봄옷이 이루어지면 沂水 沂水 : 曾點이 言志를 하면서 ?위에 읊조리는 맑은 여홍에 취하리라.


들보를 북으로 던지면 백척되는 雙松이 푸르고 검도다. 바람 불면 갑자기 관련악기의 소리가 나나니 點의 거문고·回의 거문고(琴 : 點은 曾點, 回는 顔?, 공자제자)가 곁에 있는 듯,

들보를 위로 던지면 하늘은 아스라이 몇 만길인가? 연주(連珠  星)와 합벽(合壁 : 月)이 찬란히 정기를 드리우니 夫子의 문장을 상상할 만하도다.
들보를 아래로 던지면 文石이 층층으로 넓은 집을 받치고 있다. 聖道는 계급마냥 분명한 것이어늘 높은 곳을 낮은 곳에서 오를 줄 아는 이가 적다.


엎드려 원하노니 上樑한 뒤에 산천이 굳게 지켜주고 일월이 밝혀주며 벽수(璧水 : 學宮의 연못)는 물결을 더하여 수사(洙泗 : 孔子所居)의 正脈으로 통하고 둘레 숲이 더욱 윤이 나서 소회(昭回 : 은하수, 卓彼雲漢昭回于天 [시경])의 餘光을 받을 것이며 進德하고 修業하기를 때를 놓치지 말아 선비는 千聖의 嫡統을 잇고 化民하고 成俗함에 반드시 학문으로 하여 세상을 3대(夏·商·周)의 순풍으로 돌아가며 훌륭함이 邦家의 빛이 되고 敎導의 뜻으로 이루어지소서.


광주향교의 역사적 진실

본 글의 머리글에서 수은집을 통해 광주향교가 인터넷에서 일부가 잘못 소개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스토리텔링하듯 글씨 한 글씨를 핵으로 두 번째로 이전한 시장속 시리의 광주향교와 중앙로(서동)로 다시 세 번째로 이전한 연유까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특히 광주향교가 정유재란으로 화를 당했다고 하나 강항은 역사적 진실로 사실적으로 말하기를 “추노醜奴의 일거(一炬 : 한번의 횃불)의 火를 당할줄 알았으리오. 사황(絲篁 : 樂器)고 변두(籩豆 ; 祭器)가 잿더미 속에 없어지고 殿堂고 室房이 모조리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면서 강항은 어느 상량문에서나 언제나 대들보라 일컫지 하지 않고 '들보'라 칭하며 그 들보를 사방육방에 던지며 축원(祝願)하듯 무궁하게 기원(祈願)을 한다.
 

또, 사방육방으로 '들보'를 던지면서 소중히 건축한 재산에 미래에 재앙을 물리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튼실한 건물에서 넉넉하게 학문을 닦을 수 있도록 간절함을 글 전체에서 낱낱이 보이고 있다.


이 글을 접하시는 분들이시여!!

이 치열한 경쟁의 사회 속에서 살면서 우리가 한 구절, 한 단어 한마디라도 음미하면서 좌우명으로 삼아도 좋을 글을 감히 강추 해 본다. 광주 향교 상량문의 백미(白眉)는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끝부분에 들어 있으며 굳이 설명을 곁들이지 않아도 수려(秀麗)한 문장(文章)으로 선생의 기개(氣槪)가 넘치고 큰 선비로서 막힘없는 성품까지도 나타나 이 모든 것을 축약(縮約)하듯 이 상량문에 기록해 담으려는 정성스런 글의 맥락(脈絡)이 눈앞에 펼쳐지듯 선하다.
“엎드려 원하노니 상량(上樑)한 뒤에 산천이(광주향교와 선비, 호남유림과 백성)굳게 지켜주고 일월이 밝혀주며 벽수(璧水 : 學宮의 연못)는 물결을 더하여 수사(洙泗 : 孔子所居)의 정맥(正脈)으로 통하고 둘레 숲이 더욱 윤이 나서 소회(昭回 : 은하수, 卓彼雲漢昭回于天 [시경])의 여광(餘光)을 받을 것이며 진덕(進德)하고 수업(修業)하기를 때를 놓치지 말아 선비는 천성(千聖)의 적통(嫡統)을 잇고 화민(化民)하고 성숙(成俗)함에 반드시 학문으로 하여 세상을 3대(夏·商·周)의 순풍으로 돌아가며 훌륭함이 방가(邦家)의 빛이 되고 교도(敎導)의 뜻으로 이루어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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