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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 강항의 역사적 현장을 직시(直視)해 보다!(佛甲新雨祭文 편)

'인디언 기우제'와 닮은 기우제, ‘좋은 흙을 골라 용을 만들고 비가 내리도록 성심을 다해 계속적으로 빌고 또 빌었다.’는 기록 발견.
등록날짜 [ 2021년10월10일 11시13분 ]

佛甲에서 新雨하는 祭文 (佛甲新雨祭文)

[尹後를 代하여 지음] 1611년 당시 가뭄이 극심해 영광군수인 윤황(동토 윤순거의 생부(生父))이 영광지역의 백성을 위한 근심이 커지자 이를 위해 기우제를 지내며 제문을 수은선생이 지음으로 해석.



위 제목에서부터 동토의 생부(生父)인 영광군수 윤후(尹後)와 각별한 인연이 오롯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맨 끝에서 고대국가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기우제(祈雨祭)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기우제는 제왕이나 문무백관이 하늘의 이치가 맞지 않으면 해괴망측한 사건 중 하나로 알고 자기잘못에 기인해 자기성찰을 위해 제를 올리는 게 기본이었다.


불갑사중수기문(佛甲寺重修勸文)의 한 대목에서 기우제를 지낸 곳이 나타난다. 기우제문을 뒷받침해 줄 내용으로 불갑기우제문(佛甲新雨祭文)에 이 지역의 명산인 불갑산이 신령스러워 용이 살고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산의 허리에 용추(龍湫)가 있는데 넓이가 수 백 평이요, 그 깊이는 밑을 알 수 없다. 신령스러워 용이 살고 있어 구름을 일으켜 비를 오게 한다고 하여 온 지방의 백성들이 그 이로움과 혜택을 본다고 한다.”는 내용이다.


 또, “만일 해가(당해 년에) 크게 가뭄이 들어 여러 山祭를 지내게 되면 고을 太守가 문무(文武)의 이속(吏屬)과 선비를 거느리고 와서 절에서 제계(齋戒)하며 자고 몸소 폭포에서 제사를 올렸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영광백성을 위해서는 윤후(尹後)가 영광지역에서 가장 명산(明山)이라 일컫는 불갑산을 찾아 기우제를 지내는데 함께 기우제 일정을 잡아 모월 모일 모시에 동참했으며 그 기우제문(祈雨祭文)을 수은 선생이 직접 지은 것으로 판단된다.

 

수은 선생의 기우제문 소개

첫 기우제문의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신명(神明)이시여!! 모든 것이 당신의 법이기에 이미 백성을 먹여 살린 공이 많지만 우리의 사전(私田)에 만물을 적시는 비를 빌려 줍사 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단조롭게 그냥 운문의 뜻을 넣어 지었겠냐싶어 애써 해석 글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사람의 생각을 더 해 사족(蛇足)을 달게 되었다.


언필칭 필자가 생각하는 기우제문의 해석은 간절함의 극치인 “신명(神明)하늘이시여!! 모든 것이 일찍이 당신께서 관장하시는 법이기에 이미 백성을 먹여 살린 공이 많지만 우리백성들 각자가 크던 적던 자자손손으로 이어져 와 소유하고 있는 논밭대기에 만물을 적시는 비를 빌려 줍사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가당치 않은 해석일지라도 나름 계속해 사족을 달아보기로 했으니 거듭 양해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많고 많은 날에 아주 좋고 좋은 날을 택일해 온갖 음식과 제물, 주향을 정성껏 준비해 또 다시 때도 좋고 날도 길할 때를 골라 살찐 고기와 향기로운 술을 정성을 다해 올립니다.

생각하옵건대 신물(神物 : 龍)은 인충(鱗虫) 중의 우두머리로서 명산에 오시니 창읍(敞邑)에 으뜸이시라. 이


렇게 한 번 오실 적에는 우뢰와 번개를 끼고 온갖 계곡도 넘치게 하시면서 하늘로 오르시고 하늘을 내렸으며 모든 것을 풀어줄 물을 흡족하게 뿌려 주셔서 시달리는 것들을 살려 내셨습니다.


언제든지 우리 백성들이 비를 원하면 비를 내림으로써 비록 사방은 크게 흉년이 들어도 이곳 영광 땅, 백리 안과 밖만은 홀로 풍년이 들어왔습니다.(항상 하눌님은 다른 곳과 달리 유달리 우리에게만큼은 항상 필요로 했을 때 모든 것을 가득 채워준 자연섭리에서 아주 긍정적인 문구만을 사용했음)

 

그런데 이게 웬 황당한 일이신지요?!

아! 오늘날 우리 백성들이 가뭄에 시달리고 있음은 근년(近年) 중에서도 매우 심하고 심합니다.(간절함을 북을 적은 소리에서 큰소리로 울리듯 배가(倍加) 시키고 있음) 뭉게뭉게 피어나는 뭉게구름(하얀 뭉게구름의 원망을 피해가면서 자연의 오묘함의 아름다움을 말함)이 일어 와르르 비가 쏟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와르르란 해석이 빼어난다)은 이미 촌민(村民)에게서 끊어져 버렸습니다.


어찌하여 ‘모든 햇볕을 닫으시고 모든 그늘을 드리워 주십사’ 하는 무당의 간절한 굿도 저버리시고 우리 백성들의 정성을 이렇게도 몰라주십니까?.(땡볕을 정반대되는 그늘과 대비시키고 간절함을 다했음으로 무당을 앞세우고 있음)


신명(神明) 하눌이시여!!

이제 여름 농사의 달이 다가오는데 봄 농사의 길마저 없습니다.(봄 농사의 농번기철로 접어듬) 관리(官吏)는 구중궁궐(九重宮闕)안의 근심을 나누고 이 몸은 백리(百里)안 우리 백성의 근심을 함께하며 간절하게 기원드리는 바입니다.(지방에 선비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인의사상 강조로 보임.)


항상 우리 고을은 기장도 많고 찰벼도 많게 하시는 신명(神明) 하눌님의 한 팔만 벌려주신 도움에 불과한 줄로 익히 잘 아는 형편이오니 우리네 논밭대기에 보리도 없고 벼도 없으면 그것은 감옥의 송사가 많이 일어날 시초인 것으로 여기는 불길한 징조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내가 실로 덕이 없음이지 백성들이 무슨 죄입니까?(지역의 선비로서 책임감) 이에 소격(疏格 : 분명하게 이르러움)하기를 머뭇거리지 말고 감통(感通)하시기를 올바른 길을 찾아 적용하소서.


신명(神明)님께 올리는 제물상을 풍성하게하려 했으나 변변치 못하게 (기우제를 위한 상을 차리게)되어 돼지 다리와 술병이 부끄럽게 되었지만 (대지의 메마름)이러한 대지에 마른 것을 불어서 생명을 주시는 능력으로 구름과 바람을 삼가 감히 바라나이다. 영광 땅 백리를 넘어 천리에 (비를)펑펑 쏟아주시어 3농(삼농(三農) ; 상 중 하)을 후련하게 해주소서.

 

아마도 이쯤의 기우제문이라면 긴 가뭄으로 내리지 않을 비도 펑펑 쏟아질 정도로 선생의 기우제문은 간절하고도 애절하고 백성을 위한 최고의 기우제문이 아닐까 생각하며 글을 접는다.



<편집자 주>

기우제의 근원과 방법
 위의 수은선생의 기우제문(祈雨祭文)이 처절하면서도 하늘을 감동시키고 듣는 이로 하여금 애간장을 들끓게 만드는 나열식으로 서술해 나가면서도 단어 하나라도 놓치기가 아까울 정도의 문맥의 흐름이다. 문장을 따라 가며 감히 사족을 달아 보탰지만 어설프게 어색해 보여 조금은 송구스럽다.


고래(古來)로 부터 수리시설이 부족했던 옛날일수록 인간의 이중성과 의지력의 나약함으로 인해 기우제는 자연히 통치자에 의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늘만 쳐다보는 천수답이 많아 농사는 농민의 천하 지대본으로 백성의 생사를 좌우하는 것이 농사였다.


쌀과 보리를 비롯한 오곡이 밥이고 그게 생명력이다. 하물며 민심이 천심이라는데 수리시설이 갖추지 못할수록 제왕은 백성의 눈치를 보는 것은 마땅하며 그 농사를 좌우하는 것이 바로 강우(降雨)였기 때문에 기우제에는 당시 제왕들은 인간으로서 가능한 모든 방법들이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강우(降雨)에 대한 관심은 단군신화의 환웅이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내려 왔다는 전설적인 기록에서부터 나타난다. 『삼국사기』를 살펴보면 삼국시대에 각각의 나라는 시조묘·명산대천 등지를 찾아 나서서 기우제를 올렸던 기록들이 보인다.


그 중에는 가장 많은 기우제를 지낸 것으로는 제왕이 직접 제단을 쌓도록 하여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발견되고 있으며, 강우관련해서는 용을 그려서 비가 마구 내리도록 빌었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서 자연스럽다.


『고려사절요』 권4의 고려 정종 2년 조에 기우제를 행하는 예법들이 세세히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절요』 중 이 부분을 보면 가뭄이 심할 때에는 죄수(罪囚)들을 자세히 옳고 그름을 더 분명하게 심판하여 죄 없는 자가 억울하게 형벌을 받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고, 현명한 제왕일수록 해당 관리에 지시해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고, 여느 연고이든 이유 불문하고 조상의 무덤이 파헤쳐져 밖으로 드러난 해골까지도 국가에서 찾아 정성을 다해 묻어 주었다고 기록이 전하고 있다.


더 나아가 큰 산이나 강과 바다는 구름과 비를 일으키는 곳이라고 믿어, 그쪽에 대해 기도하고, 그 다음에 종묘사직에 빌었다. 이처럼 7일마다 한 번씩 빌어도 비가 오지 않으면, 다시 큰 산과 강·바다에 다시 나아가 처음과 같이 기도하고, 가뭄이 더욱 심해지면 기우초제를 지내는 제단인 기우단(祈雨壇)에 제사 지내며 왕과 백관들이 근신하는 것을 .기본으로 정해 시행했다.


제왕은 정전(正殿)을 피하여 밖에서 정무를 보았으며, 반찬의 가짓수까지도 줄이면서 나라에 가뭄이나 홍수 등 천재지변이 발생하는 것은 제왕이나 조정의 문무백관들이 덕이 없어 정치를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려시대의 기우제는 조금 더 발전해 들어가 이제는 제왕을 비롯해 만조백관(滿朝百官)들이 함께 근신하고, 산천 유명한 곳을 찾거나 종묘나 부처·용신에게 정성껏 제사 음식을 차려 기우제를 지냈다. 인디안 민족의 기우제는 혀를 내둘릴 정도로 무섭고 끝장을 본다.


그들은 비가 내릴 때까지 연신 기우제를 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때 우리 민족도 비가 내릴 때까지 기도하며 법회(法會)도 열고, 설법(說法)을 그치지 않았다.


고려시대에서 매우 잦았던 것이 전국의 유명한 무당들을 모아 비가 내리도록 기도하는 취무도우(聚巫禱雨)의 기록이 있다. 취무도무에 참석자가 많을 때에는 300여명이 되었으며 기우제가 긴 날짜로는 6일씩, 좋은 흙을 골라 용을 만들고 비가 내리도록 성심을 다해 계속적으로 빌고 또 빌었다.


이어 『조선왕조실록』에서 기우제와 관련해 찾아보면 매년 음력으로 4월에서 7월 사이의 기우제가 거의 연중행사였음을 알 수 있다. 한 예로 태종 재위 18년간이었으며, 기우제에 관한 기록이 전무(全無)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왕자의 난으로 평정한 1403년(태종 3) 한 해뿐인 것으로 보인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기우제 [祈雨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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