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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잃어버린 10년 (3)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매관매직이 풍습인 대한제국
등록날짜 [ 2021년10월13일 08시45분 ]

# 오스트리아 외교관이 본 조선의  정세

1897년 10월에 대한제국이 탄생했지만 매관매직은 여전했다. 흡혈귀 같은 관료의 수탈은 대한제국 시대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먼저 1898년 1월 11일에 일본 도쿄 주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외교관이 수집한 조선의 정세에 대하여 살펴보자. (한국엔 공사관이 없었다)

 

“이 나라의 한탄스러운 상황은 무엇보다도 비양심적이고 부패한 관료  계층에 그 원인이 있다. 관료들은 정부로부터 봉급을 받지 못하거나   기껏해야 보잘것 없는 곡물만을 받기 때문에 마치 흡혈귀처럼 민중의 피를 빨아들이는 것이다.


이 상태가 오래 계속된다면 이 나라에서는 거의 희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며 민중은 계속 비참한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관료들에 의한 철면피한 강탈체계가 폐지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조선의 새날이 밝아 올 것이다.” (박종인 지음, 매국노 고종, 2020, p 253)

 

# 주한프랑스 공사의 보고서

1899년 3월 25일에 주한프랑스공사 플랑시는 프랑스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의 일부이다.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사례금이 높아진 관직 매매입니다. 실제로 아무리 낮은 관직이라 해도 4000 피아스트르를 지불해야 한다고 최근 언론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가장 인기를 끄는 관직은 지방 수령입니다.

 

최근 관직매매 소문이 점점 확산되어 의정부 참정(총리) 심상훈은 내부대신에게 이 같은 관행이 대한제국의 명성에 먹칠을 한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그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는데 내부대신이 황실에서 내린 명령을 집행하는 인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신들은 참정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아니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황제는 내각의 태도가 자신의 권위를 위협한다고 판단해 내부대신에게 10년 유배형을 내리고 심상훈은 15년 유배에 처했고, 다른 대신들은 파면에 처했습니다.


이 같은 느닷없는 조치로 인해 박제순 외부대신도 파면당했고, 후임으로 이도재가 임시서리로 임명됐습니다. ”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한국근대사자료집성 19권 프랑스 외무부 문서 9 대한제국 Ⅱ·1899~1901 > 대한제국의 대외 정책과 주재 외국인 1899~1901 2권> 【3】 독립협회 현황과 관직 매매)

 

한편 1899년 3월 15일의 ‘고종실록’에는 “심상훈이 군수 100명을 전보시킨 내부대신의 파면을 요청하자 고종은 의정부 여러 신하도 견책했다”고 적혀 있고, 3월 24일의 실록에는 “죄인 민병한은 10년간 황주군 철도(鐵島)에, 죄인 심상훈은 15년간 지도군(智島郡) 고군산에 유배시켰다”고 기록돼 있다.

 

# 샌즈의 비망록

1899년 10월에 주한미국공사관 서기관 샌즈가 궁내부 고문관에 취임했다. 그는 대한제국이 러·일 양국의 대립에서 벗어나 스위스처럼 영세 중립국이 되려면 내정개혁이 급선무라고 정부 고관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샌즈의 개혁은 처음부터 벽에 부딪혔다.
 
궁내부 관리들부터 부패했다. 특히 영친왕의 친모인 엄귀비는 샌즈의 개혁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샌즈는 1930년에 발간한 ‘조선비망록’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지금도 관직 임용에 뇌물 수수 관행이 너무 심해 이를 직업으로 삼는 일본인 고리대금업자까지 등장했다.


그들은 어떤 지방 관직을 얻는데 필요한 뇌물 준비금을 토지와 농산물 거래 때의 통상적인 이자인 월 12%로 후보자에게 빌려주고 공직을 얻은 뒤 짧은 기간 내에 되받아 냈다. 뇌물은 황제에게까지 올라가는 데 조선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뇌물을 그렇게 비도덕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땅과 백성은 황제가 바라는 대로 처분할 수 있는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황제는 곧 국가이다. 관리들은 황제의 징세 청부업자일 뿐이다. 지방행정도 부패했고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샌즈 지음·신복룡 역주, 조선비망록, 2019, p127~128)

 

# 청나라 공사 서수붕의 비웃음

1900년 12월에 청나라 공사 서수붕은 귀국하면서 고종의 매관매직을 비웃었다. “서수붕이 처음 고종을 뵈었을 때 조선의 기수(氣數)가 왕성하고 풍속이 아름답다고 칭찬했다. 고종이 의아하게 여기고 그 연유를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본국은 벼슬을 팔아먹은 지가 십 년도 되지 않았는데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져 종묘사직이 거의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귀국은 벼슬을 팔아먹은 지 30년이나 되었는데도 제위(帝位)가 아직 편안하니 기수가 왕성하지 않거나 풍속이 아름답지 않고서야 어찌 이럴 수 있겠습니까?’

 

고종은 크게 웃으며 부끄러운 줄 모르자 서수붕이 나가면서 말했다. ‘불쌍하구나, 대한의 백성들이여’.”(황현 지음·허경진 옮김, 매천야록, 2006, p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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