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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잃어버린 10년 (10)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약속을 지키지 않은 고종
등록날짜 [ 2021년10월22일 16시56분 ]

1898년 11월 26일 오후 1시에 경운궁 앞에 정부 관원과 각국 외교사절이 대좌한 가운데, 고종은 만민공동회원 200명과 보부상회원 200명을 불러 면담을 하였다. 

 

오후 2시 30분에 고종은 고영근·윤치호·이상재 등 만민공동회 대표를 면담하였다. 이들은 5흉의 재판, 보부상 혁파, 만민이 신임하는 대신의 임명, 헌의 6조의 실시를 주청했고, 고종은 긍정적인 답변을 하였다. 이러자 만민공동회 회원들은 만세를 세 번 부르고 해산하였다.

 

고종은 오후 4시에 홍종우·길영수·박유진 보부상 대표를 면담했다. 이들은 상무소 복설, 만민공동회 혁파, 조병식 등 8인 석방을 주청했다. 고종은 역시 긍정적으로 답변하자 보부상들도 만세를 삼창하고 물러갔다.

 

이날 고종의 양측 대표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독립협회와 황국협회 양쪽의 주장을 모두 수용한 점이 곧 논란이 되었다.   

 

11월 29일에 고종은 중추원 의관 50명을 선정 지명하였다. 지명된 중추원 의관을 계파별로 보면, 독립협회 및 만민공동회 계열이 17명, 황국협회 계열이 16명, 황제파 계열이 17명이었다. 즉 고종과 황국협회 등 수구파가 33석으로 3분의 2석을 차지한 것이다.

 

12월 1일에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는 김덕구의 장례를 만민장(萬民葬)으로 거행했다. 김덕구는 11월 21일에 마포에서 보부상과 맨주먹으로 투쟁하다가 죽은 신기료장수(구두 수선공)였다.

 

장례식은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시민들과 외국인들이 구름같이 모여서 만민장 광경을 지켜보았다.

 

12월 2일에 고종은 의정부 참정 박정양, 외부대신 민영환, 법부대신 한규설, 농상공부대신 권재형 등을 해임하였다. 12월 4일에 고종은 개혁파 민영환을 의정부 참정, 박정양을 농상공부대신으로 임명하고, 수구파 심상훈을 군부대신, 민영기를 탁지부대신, 김명규를 학부대신, 이윤용을 법부대신과 내부대신 서리로 임명했다. 수구파를 다시 기용한 것이다.

 

이러자 12월 6일에 종로에서 만민공동회가 재개되었다. 이 날 독립협회장 고영근이 상소하여 보부상 해산과 조병식등 5흉의 처벌을 촉구했다. 12월 8일에도 고영근은 다시 상소를 올려 고종이 친히 약속한 국정개혁의 조속한 실행을 촉구하였으나, 고종은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것인가? 다 알았으니 물러들 가라."고 비답하였다.

 

12월 9일에 전 참서관 안태원이 상소를 올려 민회를 규탄하였다. 12월 10일에는 의관 이남규와 이복헌 등이 민회를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날 찬정 최익현도 당장 시행해야 할 12개 조항을 상소했는데 7번째 조항에 ‘민당을 혁파하여 변란의 발판을 막으라.’는 주장이 들어 있었다.

 

12월 15일에 고영근 등은 만민공동회를 계속하면서 다시 상소를 올렸다. "신 등은 비답을 받을 때마다 모두들 기뻐하며 나랏일이 이제부터 펴질 것이며 백성들의 생업이 이제부터 안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밤낮으로 기대하였으나 아직 실시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 아! 저 민영기, 심상훈, 김명규 세 신하는 폐하의 총명을 가리고 백성들에게 해독을 퍼뜨려서 폐하가 쫓아버렸는데 어찌 다시 이 중요한 임무를 맡길 수 있겠습니까? ... 삼가 바라건대 폐하는 단안을 내려 빨리 이 무리들을 쫓아버리고 다시 슬기 있고 착한 사람을 선발하여야 모든 정령이 비로소 실시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아직도 보부상(褓負商)들은 뭉쳐서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민간에서는 이들 때문에 소란이 나고 도로는 이로 말미암아 막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뿌리를 뽑아버리는 일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앞으로 그것이 점점 늘어나고 퍼지는 화를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는 엄격히 단속하여 나쁜 버릇을 되풀이하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이에 고종이 비답하였다. "여러 차례에 걸쳐 비답을 내렸는데도 이처럼 시끄럽게 구는가? 매우 무엄하다. 다시는 시끄럽게 굴지 말라. 알았으니 물러들 가라."
(고종실록 1898년 12월 15일)  

 

12월 17일에 만민공동회는 고종에게 다시 상소를 올렸다.

 

① 보부상을 혁파했다고 하지만 황국상무협회(皇國商務協會)로 개명하여 고종의 분부를 받아 행동하고 있고, ② 보부상들의 경비는 황제의 하사금과 탁지부의 지출이라 하며, ③ 고영근·윤치호·이상재를 암살하려 하고 있고, ④ 백민회(白民會)는 만민공동회를 공격하기 위한 단체로 그 경비는 탁지부대신 민영기가 지출했다 하니 이를 조사해서 처벌할 것이며, ⑤민영기·심상훈·김명규의 해임, 조병식·민종묵·김정근 대신의 징계, 유기환·이기동 2흉의 재판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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