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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 강항의 역사적 현장을 직시(直視)해 보다<총 정리 결어 편>

한·일간 국제적인 마찰을 종식하고 민간 교류의 저력으로 나아갈 인물은 수은 강항 밖에 없다.
등록날짜 [ 2022년02월01일 21시52분 ]
 한국과 일본지역서 잠자고 있는 역사적 문적(文籍)

2014년 6월부터 시작한 수은 강항의 역사적 현장발굴사업은 호남을 넘어 영남 그리고 전국에 걸쳐 선생이 머물렀던 장소까지 샅샅이 발로 뛰며 강항의 흔적이 있는 곳이라면 모조리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그러한 선생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해 온 출발의 결과로 드디어 3년만인 2017년 에이메현 오즈시방문에 이어 2019년에는 일본으로 선발대로 건너가 일본에 남아 있는 유물들을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 교토대학도서관, 도쿄 일본국 공문서관 내각문고에서 강항휘초 16종 21책 원본과 오사카박물관에서 등원성와 문집 등을 들여 다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이러한 과정은 지역의 인물에 관심이 많은 영광군과 한빛원자력의 도움으로 1차와 2차 탐방(대거 42명이 방문함)까지 다녀올 수 있어 가능했다. 워낙 일본 문화의 특유의 엄격함과 폐쇄적인 형태로 인해 고작 그 정도로 그쳤지만 지금도 일본지역 언론을 상대로 자주 접촉하고 간헐적이지만 신기수선생의 자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소통하며 오사카도서관에 기증한 문적에 대한 복사본을 애타게 호소하고 있다.

이메일 답장에서 큰 딸은 ‘내산서원에 한번 방문하고 싶다’고 해 대한민국이 당신을 환영할 거라며 언제든지 방문을 환영할 것이라고 건방끼를 섞어 거국적 언사로 인사하기도 했다. 이러하듯 내 사전에 포기라는 게 없다!!  항상 언젠가는 진실은 끝내 통하리라 굳게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국내의 유수히 존재하는 문적과 유적지가 필요로 했다.

그렇다면 지금에서야 세월의 인고속에 닳아져 많이 없어진 현장을 찾아 나서는 것보다 「수은집」을 중심으로 파헤치고 필요로 한 부분은 현장을 찾아나서는 방향이 옳다라고 생각하고 역사적 현장에 대한 인식을 하기 위해 먼저 밑그림을 그리고 윤곽을 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해 2021년 3월초 무렵부터 집필을 시작했던 작업이 어느덧 훌쩍 2021년을 완전히 넘겨버리고 말았다.


강항, 결코 한 집안의 위인(偉人)이 아니다!!

가장 먼저 인터넷신문에 칼럼식으로 게재한 게 ”강항은 결코 한 집안의 위인(偉人)이 아니다!!“로 먼저 치고 들어갔다. 그랬더니 영광지역신문에서 헤드라인 글로 뽑아 ”강항은 결코 한 집안의 위인(偉人)이 아니다. 수은 강항은 국가적인 인물이자 ‘일본 유교의 비조’로 왕인박사에 버금가는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영광신문은 수은 강항선생 기념사업회에서 조명하는 수은 강항 선생을 재조명한다. <편집자 주>“라며 매주 게재했다. 수많은 강항의 관심 조력자가 생겨나고 애독자로 매주 즐겨 읽고 학습하는 군민이 생겨 큰 격려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자연스럽게 ”수은 강항의 역사적 현장을 직시(直視)해 보다!!“로 무려 25곳의 역사적 현장을 발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문화재로 알아주지도 않고 향토사회에서 개발하려고 하지도 않아 묻혀 있는 곳이 셀 수 없이 너무도 많은 역사적 현장이 존재하고 있었다.
 
영광군청사의 몽금정이 그렇고 강항이 천리 길을 가다가 숨이 멎을 듯 했던 황룡강이 그렇고 순천향교, 대구향교 등등 너무도 많은 곳에 선생의 숨결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역사적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은 그럼 잘 개발되어 있느냐?? 


 
광양수월정의 오기(誤記)와 도용

전혀 그렇지 않아서 문제이고 수려한 선생의 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글을 도용하고 훔치듯 가져가 마치 자기가 쓴 것처럼 표절을 하고 오용(誤用)해 학술세미나까지 개최해 바로잡고자 노력을 했다. 그 대표적인 곳이 광양수월정이다.
 
이미 이데이뉴스(등록날짜 [ 2021년 07월 11일 18시19분 ])에 너무 자세히 밝혀놨기에 이쯤해서 말을 줄인다. 광양수월정 학술세미나가 이뤄지기 전, 직계손인 강지원 변호사와 극적으로 통화가 되었다. 이미 변호사 사무실을 접고 메니페스토 실천운동가로서 방송인으로서 맹활약 중이었다.

지난 제18대 대통령후보로 출마해 내산서원을 찾았지만 집안에 누구 한사람 나서서 안내해 주는 사람이 없어 그냥 동상 앞에서 참배만 하고 귀경을 서두른 그를 인터넷신문 기사를 뒤져 연락을 하게 되었다.

2015년 전남도청의 꿈다락 토요학교의 보조금사업으로 인해 청소년과 함께 유적지를 함께 탐방을 하였고 광양세미나에서는 제4대 광양군수를 역임한 선친을 찾아 드리고 그가 범인(凡人)처럼 감개무량해 하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쩌면 위대한 인물에 의한 선양사업은 집안을 떠나 인물과 인물을 엮어주는 그러한 연결고리의 역할까지도 분명코 존재한다. 광주의 유명 인사들과 만찬모임을 가지면서 격의 없이 환담을 하면서 이 지역을 걱정하고 나라를 걱정하면서 흉금을 털어놓고 마주했던 기억들이 지금도 돌이켜보면 참 벅차고 감격스럽다.
 
글귀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현판 하나에도 조상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 타 성씨를 보면서 우리민족 누구나가 그렇게만 자기 조상을 섬긴다면 사회적 문제인 인간성 결여-도시 빈곤, 범죄-가족 해체, 청소년 문제 등은 생각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그게 그렇게 너무도 좋아 보이고 자기 조상을 섬기는 모습에 더 그네들의 천성적인 아름다운 마음씨를 명경(明鏡)처럼 들여다보는 듯했으니 하는 말이다.



쉼없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역사적 현장
 
수은 강항은 피로되어 왜국에서나 온갖 시기와 질투의 화살이 쏟아지는 사색당파의 한 중심축에서도 선비답게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탈출하면서도 왜의 적괴에게 추상과도 같은 질책을 퍼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러했던 강인한 정신력은 저어당 백형 강 해의 올곧은 정신적 흐름과 곧이어 벌어진 신묘사화로 백형의 입장과 태도 그리고 죽음을 목격한 학습 여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선생은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고 어쩌면 그러한 백형의 죽음으로 인해 쓸쓸한 문호가 되어있는 우계 성혼을 찾으면서도 모든 선비에게 고하듯 아주 당당했던 모습을 선보였다.
우계 성혼마저도 그러한 제자 강항을 높이 평가한 글은 각종 문적에서 지금도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역사적 흔적의 부족으로 인해 스토리텔링식의 역사적 현장을 짜 맞추고 단지 몇 글자를 가지고도 역사를 현장감을 살려 재조명하기도 한다. 특히 선생의 영광지역유봉마을의 유소년시절의 이야기는 좀 더 스토리텔링식을 동원해서라도 연구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 대표적인 게 글을 배울 무렵인 3~4세에 즐거이 찾아 놀았던 고인돌바위가 대표적이다. 일부 몰지각한 집안 인사들이 고인돌을 함부로 다뤄 이쪽에 조금 저쪽에 조금씩 나눠져 분산되어 있으나 다시 합쳐서 원형을 회복해 내야만 한다. 역사적 유물로 이처럼 가치가 충분한 유물이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7세 무렵 맹자정 일화와 8세에 강목촌 일화 그리고 9세에 저작한 유성약 천성부(幼成若 天性賦)는 개발하면 하는 대로 엄청난 인성교육의 스펙트럼이 될 것이다. 어쩌면 스토리텔링기법을 말했으나 「수은집」중심으로 충실히 살펴본다면 역사 그 자체의 발견이 되고 남는다.
 
사실 전국에서 편향적으로 25군데를 찾아 만족하는 게 아니라 많은 부분이 일제강점기 때 금서로 지정이 되고 나중에는 분서의 화를 당해 선생의 문적이 많은 부분이 소실이 되어 참으로 안타깝다.
 
어쩌면 그러한 부분이 곧 스토리텔링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내 유적지가 천행으로 국가지정 급으로 인정만 된다면 국내 유적지에 대한 개발은 엄청난 탄력이 붙을 것이다. 


 
일본 언론의 관심과 강항문화제

그러한 국가 지정은 곧 일본에 산재되어 있는 유물의 발굴을 쉽게 이룰 수 있다. 일본에 남아있는 ·문적을 복사본이라도 가져오게 된다면 스토리텔링기법으로 했던 역사를 바로 찾게 되고 진실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다시 거슬러 올라가자면 피로된 인·친척을 포함해 38명의 조선인을 데리고 귀국하기 위해서는 수 만 냥의 은전이 필요했을 것이다.(필자가 현 사회에 비춰 계산해 본 결과 수 십 억 원대이다)
 
당시 순수좌도 황금전의 벽서사건이후 강항과 마주앉아 선생께서 귀국의 희망을 갖기를 고대하면서 일본인들에게 글을 줘 은전을 대가로 지불받는다. 그러한 은전과 맞교환한 글이 일본전역에 그것도 오즈성과 오사카 그리고 후시미성에 있으면서 수천, 수만의 글을 써줬을 것이다.

그 글을 찾고자하는 게 일본 내 선생의 빼앗긴 문적과 함께 진정한 유물의 재발견일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게 큐슈박물관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난방(蘭芳)이라는 난초그림과 글이다.

큐슈박물관 관계자에 의하면 전시를 해 이렇게 볼 수는 있어도 되돌려줄 수가 없다는 게 참으로 가소롭고 우습기 그지없다. 이러한 글과 그림이 일본인 개개인의 가정에 보물로 셀 수없이 내려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물을 찾기 위해서는 일본인들에게 매년 한·일 공동으로 개최하는 강항문화제를 알려야만 한다.

일본내의 매스컴이 초미의 관심을 갖도록 노력하고 언론이 앞장 서 보도를 하도록 해야만 한다.  이와 함께 선생께서 일본에서 첫 도착 해변과 오즈성, 출석사 그리고 탈출을 위해 잠시 숨어있던 동굴과 히로미치 동상터 오사카성, 오사카 박물관, 교토 풍신수길 묘와 신사(풍국묘), 이비총, 까치네 집 후시미성 등등 일본 내의 역사적 현장도 차고 넘친다.
 
아마도 이러한 유물과 문적 그리고 유적지가 다 발굴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면 의지에 한국인 1호가 수은강항선생이 되고 그네들이 말한 것처럼 진정한 ‘일본 유교의 비조! 수은 강항!!’이 되어 한·일간 가장 존경할만한 인물로 수은 강항이 태양처럼 떠오르리라!!



‘강항문화제’의 기대효과

○ 대한민국의 사회문화교육에 기여
  매년 강항문화제의 한·일 각 부문별 문화교류 개최로 강항 선생의 학문적 업적 및 문화교류 정신에 바탕을 두고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학술토론, 발표회 인성교육 및 인문학강좌 개설, 문화유적 답사 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국민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   
 
○ 지역 출신 인물의 학술적 조명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일본의 유교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강항 선생의 학문적 업적을 조명하여 지역민들이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매년 개최되는 강항문화제의 한·일 문화교류로 우리 국민의 우수성을 알리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 일본과의 민간교류 활성화
  최근의 한·일관계 악화의 영향으로 교류가 중단된 상태이다. 민간 차원의 교류 확대, 일본 오즈(大洲)시의 강항 유적지 답사, 문화교류 등을 통해서 한·일간 문화교류가 활성화될 것이다. 
 
○ 국내 및 한·일 교류의 활성화
  국내에는 역사적 인물을 내새워 학술적 조명, 지역축제, 민간교류를 추진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많이 있다. 매년 개최되는 강항문화제로 한·일간 문화 교류의 물꼬를 틀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글을 마치며

이웃인 한·일간 마찰을 언제까지 안고 갈 것인가? 브랜드화 하듯 한·일간 존경할만한 인물로 삼아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이 두 가지의 숙제 아래 한·일간 국제적인 마찰을 종식하고 민간교류의 저력으로 나아갈 인물은 수은 강항밖에 없다.
 
어느 재일교포의 말이 불현 듯 스치고 지나간다. ”일본으로 시집와 30년간 단 한 번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2시간에 걸쳐 수은 강항을 만나자마자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말이 생각나지만 감히 생략하고 단언한다.
 
‘강항문화제’로 강항의 선비정신을 우리 국민들은 인성교육의 장으로 삼고 이웃인 90%이상 성선(性善)의 인성(人性)을 지닌 일본인들을 교화(敎化)시켜 더불어 함께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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