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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 조선의 청백리– 13회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초가집 정승 오리 이원익 (2)
등록날짜 [ 2023년04월03일 09시56분 ]
 1608년 2월 1일에 선조가 승하하자 광해군이 즉위하였다. 광해군은   이원익을 영의정에 임명하였다. 선조가 세상을 뜨면서 “큰일을 맡길 만한 인물은 이원익뿐이다.”라고 유언한 것이다.  이원익은 여섯 번이나 사직 의사를 밝혔으나 광해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608년 5월 7일에 이원익은 광해군에게 대동법(大同法) 실시를 건의하였다. 방납의 폐해를 막고자 함이었다. 지방의 특산물을 바치던 공납은 여러 가지 폐단이 많았다. 지방에서 납부 할 공물을 중간에서 관리들이 대신 납부하고 농민에게 대가를 받는 방납이 성행하였다.

방납업자들은 농민들에게 높은 대가를 요구하여 농민의 부담이 늘어난 반면 국가의 수입은 감소되었다.
 
임진왜란 중에 류성룡은 공납을 쌀로 대신 내게 하는 수미법(收米法)을 시행한 바 있어 이원익은 공물을 대동미, 곧 1결당 쌀 두수로 환산하여 걷는 대동법을 건의하였다. 광해군은 선혜청(宣惠廳)을 두어 대동법을 경기도에 한시적으로 시범 실시하도록 윤허하였다.(광해군일기 1608년 5월 7일) 
 
(흔히 대동법은 김육(1580-1658)이 주창하였다고 생각하나, 대동법을 주창하고 경기도에 시범 실시한 것은 이원익이고, 대동법을 충청 · 전라도까지 확대 시행한 사람이 김육이다.)
 
한편 광해군 시대는 정권 초기부터 피바람이 불었다. 1609년에 광해군은 친형 임해군을 죽였다. 이어서 광해군은  선조의 유지를 저버리고 폐모살제(廢母殺弟: 어머니를 폐위시키고 동생을 죽임)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1613년에 박순의 서자 박응서 등 명문가 서자 7명이 조령에서 은상(銀商)을 살해하고 은을 약탈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체포된 박응서 등은 취조 도중 인목대비의 친정아버지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추대하고 역모를 한다고 발언하였다. (이 일은 포도대장 한희길이 사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일로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은 처형되었고 1614년 봄에 영창대군은 강화도의 작은 골방에서 죽임을 당했다. 광해군의 사주를 받은 강화부사 정항이 아궁이에 불을 지펴 증살(蒸殺)시킨 것이다.  
 
1615년 초에 광해군은 교서를 반포해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의 죄상을 알렸다. 특히 저주의 일과 흉측한 글을 돌린 사실을 강조하고 이 일에 연루된 나인들에게 사약을 내리면서 인목대비를 폐위하려 하였다. 
 
이러자 1615년 2월에 이원익이 반대하고 나섰다. 이원익은 “어머니가 비록 자애롭지 못하여도 자식은 효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상소하였다. 
 
“어머니가 비록 자식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자식은 어머니에게 효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모자(母子)간이란 그 명분이 지극히 크고 윤기(倫紀)가 지극히 무겁기 때문입니다. 성스럽고 밝으신 전하의 시대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주와 흉측한 글은 역적들의 사주에서 나온 것이고 궁녀들이 한 짓이지 대비가 직접 관여한 것이 아닙니다.” (광해군일기 1615년 2월 5일)  
 
광해군은 노하였다. 한편으로는 평소에 대접을 후하게 한 이원익에게 무척 서운하였다. 그런데 대간들이 ‘임금을 협박하고 역적을 두둔했다’고 이원익을 탄핵하자 광해군은 6월에 이원익을 강원도 홍천으로 귀양 보냈다. 이항복은 이원익이 홍천에 유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억장이 무너졌다. 그리고 시 한 수를 지었다.   
 
 
이와 같은 일은 생각지 못했는데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그 누가 북두 자루를 훔쳐가지고 
혼자서 천기를 운용할 수 있는고 
 
왜 어찌할 수 없는 삶을 괴로이 살랴. 
차라리 죽어서 모르는 게 나으리라.
높은 하늘의 태양을 우러러보면 
본디 스스로 맑은 빛이 있다오. 
사진 오리 이원익 종택과 관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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