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제44대 대통령→최초의 흑인대통령(2009.01.12.~2017.01.20. 재임)
- 버락 후세인 오바마 주니어(영어: Barack Hussein Obama, Jr., 문화어: 버라크 오바마,
- 1961년 8월 4일 ~ , 미국 하와이 주 호놀룰루 출생), 2009년 노벨평화상 수상.
- ‘Yes, We can!(우리는 할 수 있다)’/ ‘Yes, We can! Yes, We Did(우리는 해냈다)’
- 부패와 스캔들 없는 정치,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 임기 말까지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
【미국 제44대 오바마 대통령 사진 / 출처 : 『Creative Commons Deed(한국어 위키백과)』】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버락 오바마의 명연설과 아름다운 퇴장』과 그의 생애와 대통령 재직 중 공적에 대해, 오는 1월 20일 공식 퇴임을 앞두고 그의 명연설과 아름다운퇴장이 전 세계적으로 큰 감동을 주고 있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 주니어(영어: Barack Hussein Obama, Jr., 문화어: 버라크 오바마, 1961년 8월 4일 ~ , 미국 하와이 주 호놀룰루 출생)는 미국의 정치인으로 제44대 대통령이다.
오바마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 미국 최초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자 하와이 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2009년 1월 20일부터 임기를 시작하였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교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였으며, 로스쿨 재학 시절 하버드 로리뷰의 흑인 최초 편집장으로 활동하였다. 대학 졸업 후 로스쿨에 입학하기 전에 시카고에서 지역사회 조직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로스쿨 졸업 후 시카고로 돌아가 민권 변호사로 일하였으며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에서 1992년부터 2004년까지 헌법학을 가르쳤다.
1997년에서 2004년 사이에 그는 일리노이 상원에서 3선하였다. 2000년 미국 하원 선거에서 의석을 얻지 못한 그는 2004년에 상원 선거에 출마하였다. 2004년 3월 민주당 예비 선거에서 그가 승리하였으며, 2004년 7월 민주당 전당 대회의 그가 맡은 기조 연설이 황금 시간대에 TV로 방영되는 등 일리노이 출신 상원 의원 선거 유세를 하면서 여러 사건을 통해 오바마는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2007년 2월에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는데 200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예비 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치열한 유세전을 벌인 끝에 그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었다.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는 공화당 후보인 존 매케인을 365 대 173으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어 2009년 1월 20일에 제 44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으며 2012년 11월 6일 열린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선 민주당의 재선 후보로 지명되어 밋 롬니 후보를 332 대 206으로 누르고 연임에 성공하였다.
미국 제44대 대통령이며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 버락 오바마(2009.01.12.~2017.01.20. 재임)의 가족으로는 가족으로는 아버지인『버락 오바마 시니어, 케냐의 경제학자(1936~1982년 생존)』와 어머니『스탠리 앤 던햄(1942~1995년 생존)』, 처『미셸 오바마, 미국의 변호사』, 딸『말리아 오바마, 1998년 7월 4일 생 (18세)』, 딸『사샤 오바마, 2001년 6월 10일 생(15세)』가 있다.
또, 오바마의 한국어판 저서로는『버락 오바마 (2007).《담대한 희망(Audacity of Hope)》, 랜덤하우스코리아. ISBN 978-89-255-1105-4. 』 / 『버락 오바마 (2007).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랜덤하우스코리아. ISBN 8925510149. 』 가 있다.
일부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재임중 가장 대표적인 공적은「전국민의료보험제 도입」, 2002년 8월 폭로된 이란 핵 개발관련 폭로 2006년 12월 유엔 안보리 첫 제재로 진행중인 핵 위협을 2015년 7월 14일「이란 핵 협상 타결」, 서민경제를 살리려는「오바마노믹스 실천」, 국민 눈높이에서 소통하는 친 서민 행보라고 바라보고 있다.
이러하듯 오바마 대통령의 대표적인 경제정책 『오바마노믹스』가 있다.
오바마의 경제철학은 서민들에게 경제적 기회를 더 부여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금 미국의 8분의 1의 국민들이 가난하고 6분의 1의 국민들은 비싼 의료비 때문에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걱정들을 덜어주기 위해서 오바마는 서민들에게 대책을 내놓았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의료보험 개혁, 동성결혼 합법화, 고소득자 증세 등 비교적 진보적 정책을 펼쳐 공화당과 보수층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중동 문제에서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쿠바와의 수교, 파리 기후 협약 가입 등 전지구적인 문제에서도 업적을 보이면서 임기 말까지 높은 지지를 받았다. 소박하면서도 활발한 미셸 오바마의 내조가 그의 인기를 높이는 데에도 한 몫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스포츠를 좋아하며, 높은 유머 감각으로 대중적 인기도 높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핵무기 확산에 대한 강력한 제재 정책을 발표한 것이 높이 평가되어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며 오바마 대통령은 부패와 스캔들이 없는 정치, 국민과 소통하는 친 서민 대통령으로 임기 말까지도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는 퇴임에 앞서 1월 10일,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서 감사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고별 연설에서『'국민'들이 있기에 대통령이 있고, 민주주의가 있으며, 헌법이 그 힘을 발휘하고,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50분간 진행된 고별 연설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뜨거운 눈물을 보였다. 또한 민주주의 유지를 위한 미국 국민들의 ‘단합’을 촉구했다. 『‘Yes, We can!(우리는 할 수 있다)’의 슬로건을 내걸고 제 44대 미국 대통령에 오른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마지막에,‘Yes, We can! Yes, We Did(우리는 해냈다)’』를 강조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