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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 해방정국 (19)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송진우 암살의 배후는? (2)
등록날짜 [ 2022년03월14일 10시51분 ]
 1946년 4월 9일에 송진우 암살자들이 체포되었다. 4월 10일 자 ‘서울 신문’을 읽어 보자.  
 
작년 12월 30일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고하 송진우 씨를 저격한 진범인을 체포코자 경기도 경찰국에서는 약 2개월 전부터 비밀리에 맹렬한 활동을 거듭하여 한때는 부녀동맹 간부들도 암살 혐의를 받고 취조를 당하는 등 범인 수사의 귀추가 주목되었는데 8일 밤부터 돌연 단서를 잡고 특별 무장대원들이 수사를 개시하여 9일 정오까지 진범인 한원율(일명 한현우 韓賢宇, 29), 유근배(劉根培 20), 김의현(金義賢 20) 등 3명을 체포하였다. 
 
주범 한원율은 일찍이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수업을 받고 당시 일본 수상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암살하려다가 일본 관헌에 체포되어 복역 중 해방 후 출옥하고, 귀국 후 국민대회 준비위원회에서 고 송진우씨를 돕고 있던 자인데 한원율의 지휘하에 유근배, 김의현 두 명이 권총을 발사하여 암살한 것이다. 
 
◊ 체포 경위 : 도 경찰부 발표 
 
그런데 범인을 체포하게 된 경위는 이렇다. 
 
경기도 경찰부 수사과장은 사건 발생 후 과원 이만종, 노훈경 양인을 지휘하여 각종 정보를 수집하던 중 2월 13일 오후 3시경 장택상 경찰부장으로부터 송진우 신변 보호자로 있던 자가 해안경비대에 입대하게 되었다니 그 관계를 조사하라는 명령이 있었는데 해안경비대원으로 입대하게 된 자는 미국인이 인솔하여 가게 되었으므로 장택상 경찰부장이 스톤 부장의 양해를 얻어 미군 2명을 파견하여 노 형사과장과 과원 이만종은 동 오후 두 시에 경성역에 출장하여 송진우 신변 보호 책임자 정종칠(鄭鍾七)과 해안경비대 대원으로 입대하게 된 김일수(金日洙) 두 사람을 동행하여 취조한 결과, 송진우 신변 보호자이던 백남석(白南錫), 김의현(金義賢), 신동운(申東雲), 박민석(朴閔錫), 유근배(劉根培) 등이 작년 11월 말경에 주의 주장이 상치됨으로 인하여 신변 보호자로써 탈퇴하였던 것인데, 송씨가 암살당한 후 김일수(가명)가 시내 종로통에서 김의현을 만났을 때 "송 씨를 암살한 자는 누구냐?"고 물은즉 김의현이 답하여 말하되 "그것은 왜 묻느냐? 누구이면 알아서 무엇을 할 터이냐? 그만 두어라."

이와 같은 문답이 있었는데 김일수 생각에 김의현을 체포하면 진상을 알 수 있으리라고 진술하였으므로 이상 관계자 중 2월 14일에 신동운, 백남석, 김의현을 각각 체포하여 엄밀히 취조하였으나 직접 하수자 즉 주범을 체포하기에 난점이 있었으므로, 동월 18일에 전기(前記) 3인을 석방하여 이들을 연락자로 정하고 1개월 10여 일간 각종 정보를 수집한 결과, 마침내 4월 8일 오후에 유근배가 인천 부내에 잠복중이라는 사실이 판명되었으므로 어제 (4월 9일) 아침 미명에 수사과원을 자동차로 급파하여 오후 8시 30분에 인천부 화평정에서 유근배를 체포하여 취조한 결과, 주범자인 한현우를 오후 10시 20분에 시내 신당정 304번지에서 공범자 김의현과 동시에 체포하였다. 이상 체포자 3인은 송진우 암살 진범으로 자백하였으며 남은 2명은 불일 체포될 예정이다. 
 
(출처: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자료 대한민국사 제2권 > 1946년> 경기도경찰부, 송진우 암살범 한현우, 유근배, 김의현 체포,‘서울신문’1946년 4월10일) 
 
4월 11일에 동아일보는 ‘송진우암살범 체포, 취조’사항을 보도했다.  
  
9일 경기도 경찰부에 검거된 고 송진우 선생 암살주범 한현우(일명 한원율) 외 4명의 범인은 어제도 오늘도 엄중한 취조를 받고 있는데 그 배후에는 어떠한 사주와 지시가 있었는지 자못 그 취조의 경과가 주목된다. 그리고 주범 한현우가 체포된 동시에 모든 것을 자백하고 이렇게 검거되고 보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라고 진술하여 범행을 뉘우치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범행 후 각처로 전전하며 은신 피신하는 동안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받아 가슴을 졸이던 것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범행후 범행 당시에 사용한 권총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경찰 당국에 바친 것 등을 미루어 보면 범인 자신들이 교묘히 범죄 사실을 은폐하고 있었다. 
 
(출처: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자료대한민국사 제2권 >1946년> 송진우암살범 체포, 취조, 동아일보 1946년 4월 11일)
 
( 참고자료 )
 
o 김기협 지음, 해방일기 3, 너머북스, 2012, p 352-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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