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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해방정국 3년 (18)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송진우 암살의 배후는?
등록날짜 [ 2022년03월11일 10시24분 ]

1945년 12월 30일 이른 아침에 한민당 수석 총무 송진우가 서울시 원서동 자택에서 한현우, 유근배 등 6명에게 암살당했다. 이들은 송진우에게 13발의 총탄을 난사했고 송진우는 얼굴, 심장, 배에 총알 6발을 맞아 즉사했다. 해방정국에서의 첫 번째 정치암살이었다. 이후 여운형, 장덕수, 김구의 정치암살이 잇따랐다.   
 

12월 31일자 서울신문과 동아일보는 송진우의 피살 소식을 보도했다.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송진우가 30일 오전 6시 10분경 시내 원서정 74번지 자택에서 취침중 괴한 5,6명의 피습을 받고 권총으로 안면에 1발, 심장에 1발, 복부에 3발, 하관절에 1발의 피탄(被彈)을 입고 즉시 서거하였다. 향년은 57세이다.

또 함께 취침 중이던 내종(內從) 양신훈도 하관절에 피탄을 받어 목하 박창훈 외과병원에 입원 가료중이다. 그런데 범인은 산정(山亭)뒤 철양벽을 뛰어 넘어 저택에 침입한 듯 하며 범행후 벽 밖에 계단이 있는 협로로 도주하였는데 아직 체포되지 못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대한민국사 제1권 > 1945년 > 한민당 수석총무 송진우 피살)
 

1946년 1월 1일에 동아일보는 송진우 급서에 대한 한국민주당의 성명서를 보도했다.  
 

“한국민주당에서는 12월 30일 오후 4시 한민당 회의실에서 긴급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하고 동당 수석총무 송진우가 피습급서한데 대하여 애도를 표하고 장의에 관하여 당장(黨葬)으로 하되 당 총무 원세훈을 위원장으로 하여 일체 일임키로 하고 성명서를 결의한 후 급히 당대회를 개최키로 결정하고 산회하였다.

◊ 성명서(聲明書)
 

본당의 수석총무 송진우는 지난 달 30일 오전 6시 원서동74번지 자택에서 흉한에게 피습되어 급서하였다. 본당이 발족한 지 불과 3개월에 또 우리 민족의 광복대업이 완성된다 하는 이때 특히 신탁통치문제를 둘러싸고 국가와 당의 가장 중대한 이 시국에 씨(氏)같은 민족적 투사가 서거한 것은 본당의 일대 손실일 뿐 아니라 조선 국가로 보아 중대한 손실이다.

씨(氏)는 일생을 통한 민족투사 장리(場裡)에 있어 일찍이 금일이 있을 것을 각오치 않았던 바 아니었지만 본당으로서는 이것이 첫 희생인만큼 가장 애석히 여기고 비통히 생각하는 바이다. 본당은 氏의 유지를 계승하여 조선 완전독립· 신탁통치 절대 배격의 일로로 매진하기를 맹서한다. 대한민국 27년 12월 30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대한민국사 제1권 > 1945년  >  한민당, 송진우의 피습 급서에 대해 성명서 발표)
 

1월 1일에 하지 사령관과 김구 사이에 군정청 하지 사무실에서 격렬한 충돌이 있었다. 하지는 김구에게 “다시 나를 거역하면 죽이겠다.”고 말했고, 김구는 ‘당장 자살하겠다’고 대들었다.
 

충돌의 직접 원인은 임정이 발표한 ‘포고 1호’ 때문이었다. 임정이 군정청을 마비시키고 행정권과 경찰권을 탈취하겠다는 발표는 군정청 입장에서보면 ‘쿠데타’ 시도였다.

그런데 하지가 험하게 나간데는 12월 30일 송진우 암살의 배후가 김구라는 의심 때문이었다. 송진우는 하지의 신임을 받은 고문이었다.

그런데 브루스 커밍스는 김구가 송진우 암살을 조종한 것을 당연한 사실로 여겼다.
 
“정무위원회를 이끄는 역할을 임정의 김구 일파에게 맡기려던 구상은 반탁 사태를 통해 배제되었다. 하지는 김구와 그 추종자들에게 경호원과 미제 차량, 그리고 고궁 시설의 이용 등 혜택을 제공했는데, 그들은 하지를 정면으로 배반했다. 김구는 귀국 후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불발로 끝난 쿠데타는 말할 것도 없이, 하지가 신임하던 고문 송진우의 암살을 조종했다. (출처 커밍스 지음, 한국전쟁의 기원)
 

한국 현대사를 연구한 서중석은 이렇게 적었다.
 

12월 30일 오전 6시 10분경에 한국민주당의 수석총무 송진우가 암살되었다. 그는 전부터 훈정(訓政 미 군정) 지지자로 알려졌고, 암살된 이유도 훈정을 지지하였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점도 유의하여야겠지만, 그의 암살에는 보다 큰 요인이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송진우 측은 정치적 헤게모니와 친일파 문제 등으로 임시정부 측과 갈등이 적지 않았고, 이러한 갈등은 송진우 측의 임정 측에 대한 과거의 이미지가 크게 바뀌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반탁 투쟁이 반 미군정 투쟁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미군정과 밀착된 그의 입장은 임정 측의 '즉각 정권 인수' 의지와 대립될 수 있었다. (<한국현대민족운동사연구>, 310~311쪽)
 
서중석은 송진우를 김구와 맞서는 미군정 지지자로 보는 근거로 그가 죽기 직전에 미국 기자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지는 내용을 제시했다.
 
우리들은 미군이 적어도 2년 동안은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만일 미군이 지금 떠나게 되면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게 될 염려가 있다. 왜 냐 하면 그들은 우리보다 조직이 더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민족운동사연구>, 310쪽 주26에서 재인용)

 

( 참고자료 )
o 김기협 지음, 해방일기 2, 너머북스, 2011, p 320-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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