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06월28일tue
 
티커뉴스
OFF
뉴스홈 > 사설ㆍ칼럼 > 김세곤칼럼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김세곤칼럼>해방정국 (21)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송진우 암살의 배후는? (4)
등록날짜 [ 2022년04월07일 16시49분 ]
 1945년 12월 30일 오전 6시 15분에 자택에서 피살된 송진우의 암살범은 6명은 한현우(29세), 이상기, 유근배(20세), 김의현(20세), 이창희, 김인성이었다.
 
1946년 4월 9일에 체포된 주범 한현우는 5월 12일 1심에서 사형을 구형받은 후 무기징역이 선고되었고, 김의현과 김인성은 징역 10년, 이창희는 단기 5년 장기 10년을 선고되었다. 1947년 2월 14일에 한현우는 2심에서 다시 사형이 구형되었으나 15년형을 언도받아 마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8년 9월 5일자 「국제신문」은 송진우 암살범 한현우의 옥중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신문 기사를 읽어보자.
  송진우 집 터
“군정(軍政) 3년 최대의 선물이 38선 이남의 대한민국 정부수립(1948년  8월 15일)이라면, 뜻하지 않은 가장 슬픈 성과는 정치적 · 경제적 혼란과 이에 따른 남한 각지 형무소의 초만원 상태라고 할 것이다. 2만을 넘는 수형자란 8·15이전 조선 전체 숫자에 필적하는 것이며 이 가운데는 정치범들도 있는 것이다. 
 
그들의 범행동기가 정치적 · 애국적 의도에 있었다면 이를 일반 형사범으로만 취급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정치적 신념은 얼마나 동요하고 있는가? 또는 얼마나 더 굳어지고 있는가? 가을바람 스며드는 이즈음 감방에서 고개숙여 생각하는 바 무엇이며 두 손 힘껏 쥐고 한탄하는 바 무엇인지, 우리는 그들의 정신생활을 엿보고자 한다. 
 
 
깊이 간직한 마음 경솔히 말할 그들이 아니겠지만 일단만이라도 캐취하려고 기자는 마포형무소로 한현우를 찾아갔다.
 
 
◊ 한현우 인터뷰
 
마포형무소장 문치연씨의 호의로 소장실에서 한현우를 만났다. 한현우는 말할 것도 없이 1945년 말 신탁문제가 이 땅 천지를 물끓듯하게 만들어 놓았을 때, 한민당 지도자 고하 송진우씨를 민족분열의 책임자로 단정하고 권총으로 암살한 사람이다. 
 
그는 과거 3년 간 허다하게 발행한 정치테러의 선구자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정치운동면에 있어 그가 끼친 영향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그의 동지와 몽양 여운형 암살사건(1947년 7월19일)의 범인 한지근(韓智根)과 어느 정도의 관계가 있는 것 같이 유포되고 있음을 볼 때, 그의 소위 ‘피의 세례’는 상당히 넓은 범위의 동지들 사이에서 획책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국가적 입장에서, 애국적 입장에서 이러한 비상수단을 취하였다고 법정에서 진술하였다. 그리고 여운형, 박헌영 양씨를 살해치 못한 것이 유감이라고 최후 진술하였다. 그는 국가가 있을 뿐이라고 말함으로써 가증한 테러 행위를 뉘우치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 지금도 그는 테러행위가 아직도 혼돈상태인 우리의 정치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도대체 어떻게 보는가? 
 
이러한 기자의 질문에 대하여 감옥살이 2년에 조금도 수척해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인 그는 조금 격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그는 최근엔 양복공장에 나와 작업을 하고 있다. 형무소 내에서의 칭호는 678번이다).
 
“몸은 아직도 건강한 편입니다. 유도가 2단이니까 목도 이렇게 굵습니다. 감옥살이가 얼마나 괴로우냐고요? 괴롭다면 모든 것이 다 괴롭지만 감옥살이란 이런 것이려니 생각하면 별로 불평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이 형무소는 대우가 좋습니다. 최근에는 양복공장에 나오게 되어 여러 사람과 접촉하게 되니 사는 것 같습니다. 
 
송진우씨 암살사건에 관해서는 범행 당시나 지금이나 별로 심경의 변화가 없습니다. 나는 국가적 입장에서 그른 자를 처치했을 뿐입니다. 개인으로 보면 테러의 희생이 되는 것이 매우 안 되었으나 정치테러가 효력이 있을 때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개인테러를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잘못하면 망국의 원인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조선의 현실을 보면 비분(悲憤), 두 글자 뿐입니다. 사상적 대립은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으나 38선은 우리나라의 힘으로만은 안 됩니다. 
 
정부수립에 대한 감상입니까? 나는 원래부터 대한 임정 지지자입니다. 이번 수립된 정부는 자주통일국가가 아니고 38선이 있어 불완전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을 토대로 하고 통일이 될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후략) ”
 
그런데 1950년에 6.25가 터졌다. 북한군은 옥중에서 한현우를 취조했다. 그런데 한현우가 일본에 있을 적에 조선독립연맹이란 지하운동 단체를 만든 경력으로 인해 북한군은 "동무야말로 진정한 해방투사"라면서 한현우를 석방했다.  
 
1951년 8월에 한현우가 부산 시내를 활보 중이라는 사실이 야당 국회의원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법무차관은 체포에 노력 중이라고 답변했다. 이후 한현우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올려 0 내려 0
김세곤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김세곤칼럼>해방정국 (22)
<김세곤 칼럼>해방정국 (20)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김세곤칼럼>해방정국 (22) (2022-05-03 09:50:42)
<김세곤 칼럼>해방정국 (20) (2022-03-18 11:13:11)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유물·자...
나주․화순․장흥, ...
김병내 광주 남구청장, ‘소탈...
광주 서구 어린이도서관, 정부...
순천시, ‘착한가격, 건전한 소...
대구 펙스코‘자두의 여름운동...
터키한국문화원, ‘한류, 터키...
현재접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