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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일본에서 만난 강항 선생 – 1회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에이메현 오즈시(大洲市)의 홍유 강항 현창비
등록날짜 [ 2023년01월24일 18시41분 ]
 # 2019년 6월 20일, 일본 시코쿠(四國) 에이메현(愛媛県) 오즈시(大洲市) 시민회관 앞에서 ‘홍유 강항 현창비(鴻儒 姜沆顯彰碑)’를 보았다. 이 비는 1990년 3월 11일에 ‘강항 기념비 건립회’에서 세운 것이다. 
 
일본 오즈시 시민회관 전경
사진 2 홍유 강항 현창비 
 
홍유 강항 현창비 아래에는 연보가 새겨져 있다. 
 
“1567년 전라도 영광군 불갑면에서  출생
 1588년 진사에 급제
 1593년 과거시험 문과에 합격
 1597년 정유재란때 군량공급을 담당했는데, 형 준·환과 함께 일가가 모두 도도 다카도라에게 잡혀서 이예의 오즈로 끌려옴 
1599년 교토로 이송되어 후지와라 세이카, 아까마스 히로미찌와 교유. 유학을 강의하고 후지와라의 주선으로 유학 경전을 필사함   
 1600년 석방되어 부산으로 귀한 
 1618년 고향에서 서거 . 그 후 제자 윤순거 등이 『간양록』 · 『수은집』을 발간.” 
 
그런데 현창비 옆에는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유학자 강항’ 비가 있다. 여기에는 일본어와 한국어로 유학자 강항에 대하여 설명되어 있다. 
사진 3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 유학자 강항 비 
 
그러면 한글판을 읽어보자. 
 
“ 유학자 강항선생 기념비 
 
조선 왕조시대의 탁월한 학자 姜沆(睡隠)은 풍신수길이 조선으로 재출병(정유재란)때 등당고호(藤堂高虎: 도도 다카토라)의 수군에게 포로가 되어 두 형인 준(濬)・환(渙)과 그리고 가족들이 모두 이예(愛媛県)의 대주(大洲)로 연행되었습니다.  
 
10개월에 걸친 대주성(大洲城)에서의 강항 선생의 생활은 학자로서 우대받고 금산 출석사(金山 出石寺)의 중들과 교유(交遊), 한시(漢詩)로 창수하며 나날을 보내는 자유로운 신분이었습니다.  
 
교토 후시미의 등당고호(藤堂高虎) 저택에 이송되면서부터 강호유학  (江戸儒學)의 개조(開祖)가 되는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 등원성와)와 용야(龍野)의 성주 城主 적송광도(赤松廣道: 아까마스 히로미찌), 해운계 왕 길전소암(吉田素庵: 요시다 소안) 등과의 자유로운 교제 속에서 후지와라는 「사서오경왜훈(四書五経倭訓)」을 완성했습니다. 강항 선생과 두 형등 십 여명이 사서오경(四書五経)의 대자본(大字本)을 필사(筆写)하고,  후지와라가 거기에 왜훈(倭訓)를 붙여 간행하였습니다. 
 
근세 일본 사상사의 전환기에 강항 선생과 후지와라 세이카와의 우정은 일본 사람들도 부러워할 정도였으며, 후지와라가 유학자(儒学者)로서 자립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항 선생에게 힘입은 바라고 생각합니다.  강항 선생이 일본 유학사상에 끼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1990년 3월 ”
 
사진 4  강항 현창비 전경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에서 왜군은 133척이라는 함선으로 13척의 이순신에게 패하였다. 이후 왜군은 이순신을 찾아 다니면서 무안·해남·영광 등 전라도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9월 23일에 호조좌랑 강항(1567∼1618) 일가는 영광 앞바다 논잠포(영광군 염산면)에서 왜장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 1556~1630)의 부하 노부시치로(信七郞)에게 잡혔다. 
 
강항 일가는 순천 – 안골포 – 대마도 – 일기도 – 시모노세키를 거쳐 시코쿠(四國) 지역의 오즈성(大津城 현재 에이메현 오즈시)에 도착하여  포로 생활을 하였다.

얼마 후 강항이 주자학자라는 신분이 알려지자 일본 측의 대우가 변했다. 강항은  금산(金山) 출석사(出石寺)의  승려 요시히도(好仁)와 교류하였고, 오시히도로부터 일본의 역사, 지리 등을 알아냈다.
   
이후 그는 1598년 8월 8일에 오즈성을 떠나 9월 11일에 오사카에 도착 하였고, 며칠 후에 교토의 후시미성에서 도착하였다. 강항은 후시미에서  지내면서 묘소원의 승려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 1561-1619), 단마 성주 아카마쓰 히로미치 등을 만났고 특히 후지와라 세이카는 강항을 비롯한 조선 선비 10명에게 사서오경의 필사를 부탁하였고, 강항에게 책의 발문을 요청하였다.

강항과 후지와라의 만남은 1598년 9월 하순부터 1600년 4월까지 1년 7개월간 계속되었는데, 1600년 4월 2일에 강항 일가는 후지와라와 히로미치의 주선으로 교토를 떠나, 대마도를 거쳐  5월 19일에 부산으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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