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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 일본에서 만난 강항 선생 – 2회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강항, 출석사 주지 호인과 만나다.
등록날짜 [ 2023년01월30일 09시57분 ]
 2019년 6월 20일 오후, ‘강항 선생 국제 학술 세미나’ 참가자 40여명은 야와타하마 시(八幡浜市)에 있는 출석사를 답사했다. 출석사는 오즈 시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데, 629m의 산 위에 있는 절이다. 
 
먼저 강항이 쓴 『간양록』의 관련 부분을 읽어보자. 
 
“ o 금산(金山) 출석사(出石寺)에 호인(好仁)이란 중이 있었는데 그는 문필이 넉넉한 사람이었습니다. 
 
   o 금산 출석사는 이예주 남쪽 30리에 있다. 중이 하나 있는데 그는 비전주(肥前州)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벼슬을 하여 직위가 탄정(彈正)에 이르렀고, 우리나라 서울에 와 본 일이 있으며, 자못 문자(文字)를 해독하였다. 그는 은퇴하여 절 아래 전토(田土)를 얻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강항 지음 · 이을호 옮김, 간양록, 서해문집, 2005, p 23, p 203)”
 
버스를 타고 절 입구에 도착하니 홍법 대사(弘法大師)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홍법대사(774 ~ 835)는 일본 헤이안 시대의 승려로 일본 불교 진언종(眞言宗)의 창시자이다. 774년에 시코쿠(四国) 사누키국[讚岐國:지금 가가와현]에서 태어난 그는 18세 때 교토의 대학에 입학하여 오카다 등에게 『상서(尙書)』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등 유교 경전과 사서를 배웠다.

20세 때 출가하였고, 24세 때는 『삼교지귀(三敎指歸)』라는 책을 저술하여 일찍이 배운 유교와 불교·도교를 비교하고 불교의 우수성을 강조하였다. 30세 무렵에는 당나라로 건너가 청룡사의 혜과(惠果)를 만났다. 귀국 후 진언종 발전을 위해 노력하다가 62세에 입적하였다.
사진 1 홍법대사 동상 
 
절에 들어가니 국가지정문화재(공예품)인 동종(銅鐘)이 걸려 있다.  이 종은 임진왜란 때 도도 다카도라가 약탈해간 고려의 종이다. 임진왜란은 문화재 약탈 전쟁이고 조선인을 포로로 데려간 노예전쟁이었다. 
 
그런데 나가하마마치(長浜町) 교육위원회의 설명문에는 동종에 대한 크기나 형태와 조선 고려왕조 시대에 제작된 종이라는 설명만 있고, 이 종이 어떻게 출석사에 걸려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사진 2 동종 
 
이윽고 사찰 여기저기를 둘러본 다음에 일행은 주지 스님을 만났다. 주지 스님은 친절하게도 강항과 만난 호인 스님 신위를 보여주며 제를 올려 주었다.   
사진 3 주지 스님과 대화 
 
호인 스님 신위에는 ‘5세 쾌경법인(快慶法印)’으로 적혀 있다. 일행은   숙연하게 묵념을 드렸다. 그리고 보시를 하였다. 
사진 4 법인 스님 제   

사진 5 법인 신위 
 
한편 강항은 호인 (실제 법명은 괘경법인)과 만나 자주 어울렸다. 
 
어느 날 호인은 은근히 강항에게 시 한 수를 청하였다. 자기 부채에 기념으로 써 달라는 것이었다. 강항은 부채에다 시(詩) 한 수를  써주었다.
 
해동이 여기든가 천리 밖 아득한 곳
바람 편에 보내는 소식 아는가 모르는가.
봉성의 옛터의 소식은 아득하고
꿈도 물결에 싸여 가도오도 못하네.
 
두 눈을 씻고 보라 일월이 아득거냐
한 마음 기러기 뜻을 사귄 지 오래다.
강남에 꾀꼬리 울고 꽃은 피어 만발 한 곳
날랜 배를 타면 돌아와 그대에게 묵으리  
 
이러자 호인 스님은 물끄러미 들여다 보더니 고개를 끄덕 거렸다.
 
“알겠소, 알겠어! 그러나 배도 없고 붙잡혀 있으니 어떡하오.” 
(강항 지음 · 이을호 옮김, 간양록, p 203-204) 
 
그런데 이 시는 오즈시 시민회관 앞에 세워진 ‘홍유 강항 현창비(鴻儒 姜沆顯彰碑)’ 뒷면에 적혀 있다. 
 
“근세 일본 사상사에 큰 영향을 끼친 유학자 강항이 이예에 있으면서 쓴 7언 율시. ... 글씨는 오즈 시장이 썼다.” 
 

사진 6 홍유강항 현창비 뒷면
 
오즈시 사람들의 강항 기리는 정신은 참으로 놀랍다.
오즈 시 초등학교 사회과목 부교재에는 ‘조선 선비 강항’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강항이 임진왜란때 포로로 오즈 성에 압송되어 왔으며, 그때 신유학을 가르쳐 일본 유학의 근본이 되었다고 적혀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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