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10월18일sun
 
티커뉴스
OFF
뉴스홈 > 사설ㆍ칼럼 > e -독자칼럼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일라 기고의 글> 왜국(倭國)서 출세의 신으로 부활한 수은 강항!

수은 강항, 후지와라 세이카에 유학 전해 일본 유학의 시조...선인의 배려의 마음을 기리고, 양국의 우호와 친선을 기원해 지장상을 세운다.
등록날짜 [ 2026년09월02일 21시22분 ]

 우리에게는 낯설은 에히메현(愛媛県) 오주(大洲)를 꼭 방문하는 이유가 있다. 간양록의 저자 강항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서다. 오주(大洲)시에서 강항과 관련된 문화유산은 오주성을 비롯하여 여러 장소를 방문해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나에게 유독 절절하게 와닿는 곳이 있으니, 그 곳은 작은 농촌마을에 위치한 전각 ‘오모이야리 지장’(思いやり地蔵)이었다. 429년전인 1597년 나가하마(長濱)에 상륙한 강항 일행은 오즈성으로 호송되던 도중, 고로(五郎) 지역의 히지카와(肱川)를 건너려다가 넘어져 익사 당할 뻔했다.
 
 그 찰라에 강항 일행을 구해 주고 음식과 차를 대접해 준 왜인들이 있었다. 이러한 처지에서 강항은 “일본 사람 중에도 이렇게까지 지극한 정성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라는 취지의 글을 남긴다.

이 글로 인해 후일 그 지역 일본인이 그곳에 오모이야리 지장상을 세우게 되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강항은 타계했으나  그의 족적은 영원하다. 1597년 정유재란에 피로되어 낯선 일본 으로 끌려왔고, 오주(大洲)에서 억류된 나날을 거쳐 교토(京都)로 이송되었다. 
 
강항이 조선으로 돌아간 뒤에도 멍에로 인해 그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선비의 기상을 잃지않고 한 인간으로서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후학을 양성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족적은 그가 머문 그 곳에서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를 증명하듯 오주(大洲)에는 오늘날 ‘출세지장(出世地藏)’이라 불리는 지장보살상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곁에는 강항과 현지인의 인연을 기억하는 ‘오모이야리 지장’(思いやり地蔵)이 자리한다. 출세지장은 바로 강항을 기리는 지장보살이다. 피로인으로, 포로로 끌려온 강항이 이곳에서 학문을 전하고 일본 유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인연을 기리고 있다. 
 
어느해 부터인가 일본인들은 그를 출세와 학문의 길을 열어주는 존재로 두손 모우고 공손히 모시기 시작했다. 포로로 끌려왔던 조선의 선비가 일본의 학자들과 교류했다. 그들중 6살이 더 많은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에게는『강항휘초』를 전했다. 
 
그리고일본은 신유학을 받아들여 국시로 삼았다.
 
 『강항휘초』와 후지와라 세이카의 사서오경 왜훈본으로 일본열도는 삽시간에 데라꼬야 학당으로 가득했다. 여기에 줄지어 사무라이가 왼 손에 칼, 오른 손에 붓을 들고 나타났다. 그 신유학은 훗날 일본 유학의 시조로 불리는 후지와라 세이카(순수좌)를 거쳐 하야시 라잔(林羅山)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강항은 일본 유학 발전과 국시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가장 낮은 신분인 포로로 일본에 끌려온 인물이, 세월이 흐른 뒤에는 오히려 수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입에서 입으로 "해동강부자!  강항!"!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학문과 성공을 말하게 디자인하는 존재로 강항이 부활하게된 동기가 된다. 강항은 타계하였지만, 그가 남긴 지식과 선비정신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본은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큰 고난을 겪었던 땅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곳에서 다시 살아나 부활한 것이다. 오주(大洲)의 출세지장 앞에 서면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불행한 모습으로 이 땅에 끌려왔던 한 인물이 400여 년 뒤에는 일본인들에게 배움과 성공의 아이콘이 되었노라고!!
 
그리고 일본의 그 지난한 세월속에서 출세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고...!!
 
 ‘오모이야리 지장’(思いやり地蔵)을 소개하는 간판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에게 유학을 전해 일본 유학의 시조가 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선인의 따뜻한 배려의 마음을 기리고, 일본과 한국의 우호와 친선을 기원하며 이 지장상을 세운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강항이 쓴 시 한수가 적혀 있는데 다음과 같다. 
 
                 瓊花瑶草不知名 (경화요초부지명)                                    강 항의 시                        
                                                                                                          번역 일라 
 
瓊花瑶草不知名
이름모를 꽃과 초목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九十春光律外栄
봄날의 햇살은 흐트러짐 없이 한결같이 빛나네
明月楼前如可寄
누각 앞의 맑은 달빛을 어찌 보내 드릴까나
美人応識遠人情
님은 아시겠지 멀리 있어도 변함없는 이내 마음을  
저작권자 ⓒ 이데이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 0 내려 0
최금환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강항, <경화요초부지명>으로 후지와라세이카를 거두다!
<독자칼럼> 불갑사 상사화 축제를 기다리며,,,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독자칼럼> 불갑사 상사화 축제를 기다리며,,, (2026-08-20 09:25:59)
나주 영산강정원 가을 나들이 ...
영광군, ‘2026년 미래인재 과...
광주특별시 서구, 내년부터 종...
광주특별시 남구, 김장철 음식...
일본 이즈미시 부시장단, 순천 ...
전남광주통합특별시-문화체육관...
전남광주특별시교육청, 학부모 ...
현재접속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