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瓊花瑶草不知名>
강 항의 시 / 번역 利隱
瓊花瑶草不知名
이름모를 풀과 꽃들은 바람에 사방팔방 흔들리고
九十春光律外栄
봄빛은 구십일 동안의 영화로움이고
明月楼前如可寄
밝은 달빛은 누정(樓亭) 앞에 머물 뿐인데
美人応識遠人情
님은 응당(應當) 멀리 있는 이내 심정마저 알리라.
거듭 <경화요초부지명>의 시를 서술해 보자면
“이름모를 풀과 꽃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사방팔방에 피고지고 찬란한 그 봄빛도 기껏 해봐야 구십일 동안의 영화 뿐이고 아무리 밝은 달빛도 정자 안까지 못 비추고 지나는 게 우주의 섭리로 변치 않은 자연의 현상의 하나이고
고작 누각 앞에만 머물 뿐으로 초장의 풀과 꽃이며, 이어지는 봄빛도, 그 휘황찬란한 달빛도 이와 같이 모든 게 흘러감에도 일인지상(至上)의 임금은 아무리 멀리 떨어졌다 한들 응당 이내 마음을 속속들이 헤아리라.”
당시 강항의 글은 일본열도를 흔들고 있었다. 그 인기를 간접적으로 실감해 보는 방법이 있다. 조선통신사 행렬을 소개하는 매스컴이든 조선왕조실록이든 그 사료(史料)를 조금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강항은 1598년 가을에 도도다카도라에 의해 에히메현 오즈시에서 교토로 압송되었다. 그러나 이미 교토의 지식층에서는 입소문으로 강항의 글은 왜국을 뒤흔들고 있었다. 그해 가을 어느 날 왜승이 낡은 병풍 위에 누르고 흰 국화와 목련과 나팔꽃을 그려 놓고 강항의 시를 합죽선(合竹扇)에 받고자 청했다.
다른 폭에는 경화요초(瓊花瑶草)가 그려 있었다. 강항은 사양하다가 그 승려의 간절함에 승낙을 하고 만다. 이후 붓을 든 강항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시 한수를 지어줬다. 그 시가 <경화요초부지명>이다.
더 놀라운 것은 순수좌(舜首座, 후지와라 세이카)가 <경화요초부지명>의 시를 접하고 즉석에서 답시를 지었다.
특히 순수좌는 병풍 위의 흰 국화와 목련과 나팔꽃중 유독히 수은 강항을 국화에 비유해 답시를 지었다.
<국화같은 스승>
순수좌(舜首座) 시 / 출처 『간양록』
“가지가지 국화 빛이 알뜰히 얽혔으니
이 분(강항)의 새 글제 더욱 좋아 보이네.
가을 서리 맞았거늘 높은 절의(節義) 내 아노라
꽃(국화)을 보고 이르는 말 이 분이 내 스승 아닐쏘냐.”
6살이나 연상인 제자가 피로되어 압송된 스승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절의정신을 흠모하며 노래했다. 이 답시는 오사카중앙박물관에 가면 서고에서 만날 수 있다. 『등원성와 행장』의 서문이다. 순수좌의 수제자인 하야시 라잔이 발문했다. 어마 무시한 하야시 가문을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제3공화국이나 김두환이 주인공으로 그려진 <야인시대>의 건달 하야시의 활약을 상상해 보면 금방 그 권세를 알 수 있다. 그 조상이 하야시 라잔인 것이다.
이상의 글은 강항을 말할 때 <주자학>, <정주학>, <도학>, <이학>, <성학>, <실학>, <의리의 학> 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강항이 일본에 전수한건 조선유학으로 조선국의 국시(國是)에 맞춰 상하좌우가 잘 나타난 <신유학>,이 옳다.
이 신유학 전수를 필자는 <강항학>의 전수라 주장하고자 한다.
<강항학>의 진수는 그들에게는 국보로 지정된 『강항휘초』 16종 21책에서 출발한다. 후지와라 세이카는 하야시 라잔과 함께 『강항휘초』 에 포함된 사서오경을 추슬러 『사서오경 왜훈본』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일본유학은 신유사상과 섞어져 잡탕이 된게 사실이다. 하지만 원류는 이 『사서오경 왜훈본』에서 출발하게 된다.
후지와라 세이카는 이 『사서오경 왜훈본』을 완성하고서 넘쳐나는 자신감으로 일갈(一喝)했다.
“향후 일본에서 유학을 논하고자 하는 자는 이 『사서오경 왜훈본』을 표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왜국에 학문의 전수는 지금이라도 올바르게 정리되어야 하겠다. 난데없이 퇴계를 넣고 되지도 않는 학봉 김성일을 짜 맞춘다고 역사가 정립되는게 아니다. 역사는 끝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와 같다. 그 물이 흘러간 물이라도 물레방의 원형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수은 강항에서 전수되어 후지와라세이카로 이어진 『강항휘초』는 하야시라잔에 의해 꽃피웠다. 그럼에도 일본에서는 끊임없는 배반과 배신의 역사의 굴레에서 데라꼬야(주자학당)로 인해 글을 배워 양명학으로 일어선 이들이 보인다. 시코쿠에서는 나카에 도주가 일어섰고 교토에서는 낭인출신인 야마자키 안사이가 신유사상으로 일본열도를 들끓게 했다.
하야시 라잔과 이들이 서로가 으르렁대며 독보적인 길을 간 것 역시 데라꼬야에서 『사서오경 왜훈본』에 의한 『사자소학』 등을 읽었기에 그 먹물(학문)튀김으로 독학도 가능했던 것이다. 이게 일본의 지금의 근엄한 학자들의 스승으로 감추고 싶은 속마음의 재조명의 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