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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해방정국 3년 (17)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아! 고하 송진우 (2)
등록날짜 [ 2022년03월08일 10시34분 ]
 1945년 12월 30일 오전 6시15분에 송진우가 한현우 등 6명의 습격을 받고 자택에서 암살당했다. 윤보선, 장택상, 장덕수가 달려왔고, 곧이어 조병옥, 윤치영, 김준연 등이 도착했다.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은 송진우의 빈소에서 엎드려 고하 형님의 원수를 갚겠다고 통곡하고 울부짖었다.
 
12월 31일에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全評)은 이례적으로 성명서를 발표하여 개인 테러의 절대 배격을 주장하였다.
 
"이 중대한 민족운동의 위기에 있서 개인적 테러는 도리어 완전한 민족통일을 저해하고 또 혼란을 일으킬 뿐임으로 상대 여하를 불문하고 개인 테러는 절대 배격한다.(후략) 
(<서울신문> 1946년 1월 1일자) 
 
1946년 1월 5일에 송진우는 동아일보와 한국민주당 그리고 국민대회준비회의 합동장으로 영결식이 거행돼, 서울 망우리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묘소에 세워진 비석에는 고하 송진우의 평생 친구였던 위당 정인보가 헌사한 글이 새겨져 있다. 
 
“세상 어지러움이 오래이면 선비는 스스로가 뜻을 세워 가지 못할 까   근심을 하거니와 혹 절조를 자랑할 수는 있어도 지략과 포부를 가진   이는 드문데 그 절조와 포부를 겸해 갖춘 이로 내 친구 중에 고하 송군이 있다. - 비문 중에서 ” 
 
송진우 묘는 1966년 11월에 서울 영등포구 신정동 산43-2번지 지향산 기슭에 이장되었고, 1988년 5월엔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으로 천묘,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에 송진우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83년에는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고, 1991년 5월에는 전남 담양군 담양읍 관어공원 내에 '고하 송진우추모비'가 세워졌다. 2009년에는 전남 담양에 있는 생가가 복원되었고 2010년엔 생가 옆에 고하 송진우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2021년 8월에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일장기 말소(日章旗抹消) 기사 보도를 통해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한 독립운동가 송진우,여운형,이길용 선생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이들은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이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하자 손기정 유니폼에서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했다.  
 
이 사건으로 송진우는 1936년 11월에 동아일보 사장을 사임하였고, 1940년 8월 10일에 동아일보는 지령 6819호를 끝으로 강제 폐간되었다. 
 
이후 송진우는 모든 외부 활동을 접고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물론 송진진우에 대한 총독부의 감시는 여전했다.  
 
1940년에 창씨 개명이 실시되자 이광수는 제일 먼저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바꾸고 ‘창씨와 나’를 기고하는 등 적극 선전 했다. 윤동주도 일본 유학 직전인 1941년 12월에 히라누마 도쥬(平沼東柱)로 창씨 개명 했다. 하지만 송진우는 단연코 창씨개명을 거부했다.  
 
한편 1941년 12월에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전시 총동원령을 내 리고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학도병 지원을 강요했다. 이러자 이광수와 최남선 등 많은 인사들이 학도병 출전 권유 강연 등을 하여 변절하였다. 송진우도 총독부로부터 학도병 권유 유세 등을 강요받았지만, 그는 폐인을 자처하고 칩거했다.  
 
끝으로 송진우에 대한 위당 정인보의 인물평을 읽는다.    
 
“고하가 일제의 암흑지대에 불굴의 정신으로 민족을 이끌고, 민족에게 희망과 빛을 주어 갈 길을 밝힌 공로는 임진왜란 시의 충무공의 공적에 비길 수 있다. 임진왜란시는 무력하나마 뒷일을 보살필 정부가 있었지만 선생은 나라가 망한 후에 오직 민족을 믿고, 민족에 대한 신념과 사명감으로 일생을 헌신했다. 수없이 많은 어려운 고비에도 고결한 지덕(知德)과 탁월한 판단력으로 이를 헤쳐나가고, 끊임없는 유혹과 꾐에도 빠지지 않은 독야청청의 일생이었다.” 
 
(참고문헌)
 
(재) 고하 송진우 선생기념사업회, 고하 송진우, 동아일보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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